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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의 일상

고라니 한 마리

by 빠피홍 2023. 1. 26.

 

 

고라니 한 마리

 

 

겁도 없는 놈이다.

남의 집 안마당에 몰래 들어온 저 놈은 무슨 배짱으로 물끄러미 날 쳐다보며 한동안 그러고 있는 것일까? 이른 봄이라면 일찍 나온 꽃잎이라도 잘라 먹을 속셈으로 월담 할 수 있겠지만 바짝 마른 풀잎만 남아있는 황량한 겨울 정원에 산책이라도 나온 것인가?

 

우리 집 울타리는 구조물로 만든 담이 아닌 에메랄드 골드 측백나무와 회양목을 섞어 조성된 생 울타리여서 이놈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점프하기 쉽고 나무사이로 쉬 탈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 여유 있게 무단침입을 감행한 것 같다.

 

물끄러미 창밖을 보는데 덩치 큰 고라니 한 마리와 눈을 마주쳤다. 창문을 살짝 열었는데도 도망가지 않는다. 이미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어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태연하다.

 

바로 옆 교회 뒤쪽 산에서 멧돼지와 고라니가 자주 내려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주로 야간에 몰래 다녀갔는데 이제는 아예 한 낮에 마을로 내려오는 걸 보니 먹거리가 없긴 없는 모양이다.

 

몇 년 전에도 정원 나무 옆에 숨어 있던 고라니가 나를 보고 후다닥 놀라 튀는 통에 엄청 놀란 일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던 오리엔탈 포피 양귀비의 푸른 잎을 몽땅 뜯어 먹어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겨울에 간혹 있는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도 어제 고라니가 마당에 들어온 것을 보았다고 놀라워했다. 이제 이놈들이 아예 상주할 작정인가 보다. 내가 사는 곳이 강원도 산골도 아니고 경기도 광주이며 20여개 이상의 집이 모여 있는 곳인데도 이제 이놈들이 대 놓고 마을로 내려오는 것을 보니 고라니의 개체 수가 많이 늘긴 늘었나보다.

 

 

2023년1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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