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병(熱射病)
올해만큼 더위가 또 있으랴.
아니 내가 착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해가 바뀔 때마다 늘 처음으로 겪는 더위라고 줄곧 읊어댔으니 말이다.
풀을 뽑고, 보기 싫은 나무 가지를 몇 개 자르고 나자 잠깐 사이지만 팔뚝에 그리고 목덜미에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땀을 흘리고 나면 시원한 생수보다는 찬 막걸리가 댕긴다.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면서도 목구멍이 뻥 뚫린 듯 시원해 온다.
“이러다 큰일 나겠어. 뭐 급한 게 없잖아. 쉬어가면서 해도 되지”
일을 하면서 쉰다는 게 영 몸에 베어있지 않아 쉬어야지 하고 중얼대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하는 내가 약간 겁이 난다. 열사병이 별겐가, 꽉 찬 나이와 뜨거운 햇볕을 쪼인 시간에 무리를 가하면 탈이 나는 것을.
의자에 가만히 앉아 마치 잔디밭 안쪽이 자기영역인양 치고 들어온 몇몇 꽃들을 무심코 본다.
살기 위해서 햇볕을 쫓아 가다 보니 줄기가 굽어졌어도 넓고 밝은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나의 삶도 뿌리는 울릉도였건만 어찌어찌 하여 서울로 오게되었고 이제 가을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너 댓 송이 가족을 이루고 있는 저 백일홍과 무엇이 다르랴.
어찌 어찌해서 뿌리를 내린 백일홍이 나무 그늘에 가려 잔디밭 방향으로 고개를 내민 것이 잔디밭 속에 뿌리를 내린 것만 같다. 초록빛 잔디가 배경을 주어서일까 한 폭의 그림 같아 보인다.
그러고 보니 또 하나가 있다. ‘왕해국’이다. 아직 꽃봉오리는 없지만 이 놈 또한 9월 중순이면 잔디밭 쪽으로 보라 빛 꽃을 늘어뜨릴 것이다.
‘붓들레아’는 키가 커서일까 애당초 잔디밭 안쪽으로 쑥 들어와 있다.
또 한잔의 막걸리를 마시면서 혼자 중얼댄다.
“쉬엄쉬엄 하자”
@2016년8월16일(화요일)
달랑 한 뿌리 백일홍인데
마치 자기 안 방인양 여유롭다.
계절을 잊은 불도화가 몇 송이 피어있다.
4월이나 5월에 피어야 할 꽃이 가을을 목전에 둔 지금에 피는 사연은?
ㅈ
붓들레야가 잔디밭 안 쪽으로 들어와 있다
왕해국이 잔디밭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이제 곧 가을이 오면 파란 잔디를 배경으로 보라빛 왕해국이 곷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