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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민병호의 고국 나들이

by 빠피홍 2023. 10. 22.

 

 

민병호의 고국 나들이

 

 

민병호 친구가 미국 산호세에서 일시 귀국했다는 소식이다. 수소문해보니 집안의 일도 있고하여 겸사겸사 잠시 다니러왔다는 것이다. 그를 못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고대64농경 카톡방을 통해 간간히 그의 소식을 듣고 있으나 빨리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야 한다. 부산이나 대구 같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도 아니지 않는가? 가까운 친구들도 멀리 있으면 소원해지는데 오랜 세월 이국에서 살던 병호가 부인과 함께 왔다고 하는데 얼른 만나고 싶었다.

 

이제 나이 팔십이니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세월이기에 더욱 절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종로3가 탑골공원에서 친구들이 모였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여유가 있어 안을 둘러보았는데 옛 파고다공원은 그대로였다. 원각사 10층탑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큰 유리통에 갇혀있는 모양이 조금 어색하다. 독립선언문 비문도 새삼스러웠다. 단지 배식 받으려는 노인들이 웅크린 채 긴 줄을 서있는 모습이 다를 뿐 큰 변화가 없다. 병호는 이 모습이 신기했는지 줄 서있는 이들 사진 몇 장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병철, 정성천, 홍진호, 이순복, 김호섭, 윤정인, 민병호 그리고 나 이렇게 여덟 명이 모였다. 낙원동 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저곳 헤매지 않고 용케도 알맞은 식당을 찾아내었다. 모두들 ‘사동면옥’을 잘 알고있는 듯 했다. 파전과 전골만두로 소맥과 함께 몇 잔 즐겼다. 순복이가 직접 비벼서 한 공기 한 공기씩 내놓은 비빔밥이 최고의 맛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윤정인의 제스처가 아니더라도 역시 일품솜씨였다.

 

‘더쌍화’에서 쌍화차를 마셨다. 실내에는 우리 또래의 늙은이들이 복작거린다. 쌍화차를 시켰는데 다른 곳과 달리 작은 트레이에 담겨져 나오는 것이 이채로웠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뚜껑 덥힌 쌍화차, 할배들 건강하시라고 꿀에 절인 인삼, 스프스푼에 담아 내놓은 죽, 콩알만 한 떡(?)같은 것 등 뭔가 노인들의 자존을 세워주는 세팅이다. 가격은 5천원이다. 얼마 전 낙원동 어느 찻집에서 만원에 쌍화차를 마신 적이 있었는데 이건 반값이다. 개별용 트레이를 준비한 점주의 발상이 한끝 돋보인다. 노인들에게 베푸는 최대의 예의 같은 느낌이 든다. 병호는 죽이 맛이 있었나 보다. 아주머니 보고 하나 더 달라고 하며 맛있게 먹는다.

 

병호의 걸음걸이가 약간 불편해보여 걱정이 되나 나 또한 오른쪽 골반 관절염증이 있어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은지라 모두들 열심히 많이 걷고 관리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낙상하지 않도록 부디 조심하여 지내길 바랄 뿐이다. 그가 초창기 미국에서 도전했던 일들을 듣고보니 잘 이겨내리라고 본다. 당초에는 경영학을 공부하려 했으나 학장이 미국에 영주할 계획이면 이과계를 선택하라는 권유로 컴퓨터공학을 새로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일본에 3년이나 근무를 한 경험도 이야기 해주었다. 집념의 사나이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1학년부터 다시 그것도 전혀 다른 전공에 도전할 수 있었던 그의 끈질긴 집념에 친구로서 존경을 보내고싶다. 딸 둘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고 큰딸은 대학교수로 재직중이고 둘째는 어느 회사의 간부로 일하고 있다한다. 수고하셨네. 정말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일이네. 건강 단디 챙기시고 잘 다녀가시게. 그리고 부인께도 안부를. 자네 때문에 오늘 모두 즐거웠네.

 

 

@2023년10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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