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늙어가는 중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챙기고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 가기위해 버스에 오른다. 목적지는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으로 나오는 1번 출구다. 12시 약속이니 9시 반 집 앞에 오는 버스를 타면 딱 두 시간이면 된다. 버스로 30분, 하남에 도착하여 20분 정도 도보로 걸어 검담산역 5호선 전철을 타면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다.
우린 여태 종로5가 광장시장 근처에서 만나곤 했으나 종로3가에서 다시 1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 더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게 됐으니 그만큼 편해졌다. 그만큼 오래 걷기가 불편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느새 노년이 되어 서울에서 모임약속이 있으면 큰 용기가 필요해진다. 아무리 똑 바로 걸으려고 해도 걸음걸이가 예전과 달리 좌우로 조금씩 휘청거리니 힘에 부친다. 그래도 오늘은 여자 친구들도 온다고 하니 모처럼 많은 친구들이 모이는 셈이 되었다. 홍정자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보게 되니 70년의 세월만큼 우린 늙게 만나게 된 것이다.
약속시간 30분 일찍 1번 출구로 나오자 황보정이 미리 나와 있었다. 처음으로 종로3가에서 만나는 것이어서 미리 식당을 찾아봐야했다. 정이는 친구들을 맞이하라고 한 후 나 혼자 옛 피카다리극장 쪽 빌딩 6층으로 올라가보니 대부분의 식당이 커튼을 친 채 어수선했다. 아마 수리중인 것 같았다. 다행히 돈까스 식당 하나가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테이블이 넓어 여섯 명이 쉽게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가격표를 보니 대부분 만 원 이하다. 술도 파느냐고 물으니 맥주와 소주가 있다고 한다. 바로 옆에는 커피점도 있었다. 간단히 식사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어 좋아보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식당가 몇 곳을 둘러보니 여섯 명이 앉을 마땅한 자리가 없을 뿐 아니라 음식 종류도 신통치 않았다. 요즘은 음식 값도 비싸고 소주 값도 한 병에 6~7천원 한다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은 이원대가 쏘는 날이다. 결론을 내렸다. 가격이 좋고 공간이 넓고 바로 옆에 커피숍이 있으며 1번 출구 바로 옆이어서 노인들이 가기에 가까운 것 등 모든 게 좋았다.
반가운 얼굴이 다 모였다. 멀리 부천에서 오애순, 경기도 광주에서 윤종림, 구리에서 이원대, 울산에 거주하다가 서울로 올라온 홍정자, 황보정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명이 모였다. 그러고 보니 서울사람은 황보정 뿐이다. 천안에 있는 김정숙이 참석했으면 좋았으련만 목감기에 걸려 참석치 못한 것이 아쉬웠다.
사람 여섯 명에 달랑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으로 입가심하고 카페라때와 카푸치노는 윤종림이 쏘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옛 친구들과 만나 담소하고 그간의 안부를 서로 물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집으로 오는 내내 아직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진하게 다가왔다. 나와 우린 지금 확실히 늙고 있는 중이다.
2023년6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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