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친구들
“입학을 기념하여 4285.3.3.字 우산국민학교”
며칠 전 대구에 모인 고향친구들이 70여 년 전 교사 정문 앞에서 찍은 빛바랜 입학사진이다. 많은 친구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느새 흰 머리가 그득한 칠십의 아홉수 나이들이다. 한국나이로는 여든 살이다. 2월의 끝자락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몇 년간 만나지 못한 모임을 미룰 수 없다고 하여 일자를 댕겼다.
서울에서 4명, 포항에서 2명, 부산에서 1명 그리고는 모두 대구 근교에서 온 친구들이다. 남자들이 12명 여자는 단 두 명뿐이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가는 대구다. 황보정과 이원대는 서울역에서 KTX로, 윤종림과 나는 수서역에 합세하여 1시간40분만에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예전 같았으면 1박2일이 기본이었다. 몇 년에 한 번씩 팔공산, 포항 대보, 경주 등에서 우린 밤 새워 이야기하고 마시고 아이들처럼 즐거워했었다. 나이 들어 객지에서 음주가무를 하며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이제는 그럴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얼마나 좋은가? 멀리 떨어져있는 친구들과 만나 즐겁게 놀고 당일 편히 돌아올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모두들 건강해보였다. 몸이 불편한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모였다. 이전만 해도 많이 참석했던 여자 친구들이 빠져 아쉬웠지만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모임을 갖느냐고 우리를 안내하는 운전기사가 놀라워한다. 우린 다른 동네의 여느 친구들과는 그 격이 다르지 않는가? 해방을 전후 하여 태어났고 육이오 사변을 거치며 육지와는 완전히 단절된 외로운 섬에서 태어나 함께 학교를 다녔으니 유별난 고향친구들인 셈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근황을 차근차근 듣고 보니 모두들 노후를 즐기고 평안하게 보내는 것 같아 흐뭇했다. 인생을 잘 살아온 증좌일터이다. 돼지갈비 맛이 일품이었다. 수성구 범물동에 있는 ‘복동이숯불갈비’ 식당이 친구들의 아지트인 셈이었다.
밤 9시6분차에 몸을 실어 대구를 떠나면서도 집까지 돌아오는 것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는 것은 아직은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은 아닐는지 친구들과의 하루가 내 마음의 일기장에 선명하게 각인된 것 같아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모두들 잘 살아왔고 멋진 생을 영위한 친구들이 아닌가? 남은 인생 모두 건강하시게.
@2023년2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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