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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의나루 역’ 화장실

by 빠피홍 2023. 1. 12.

경기도 덕평휴게소의 화장실(식사를 해도 좋을 정도의 깔끔한 화장실이다)

 

 

*본 칼럼은 2009320일 울사모에 게재한 것으로 현재의 시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여의나루 역’ 화장실

 

화장실 이야기가 지금도 심심찮게 흥미의 대상이 되어 신문지상에 회자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는 2013년까지 37억 원을 투입하여 화장실을 37개소나 확충하고, 개방화장실 지정도 대폭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2009년3월4일, 조선일보)

 

화장실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도 본능적으로 불쾌한 느낌과 지저분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깔끔한 화장실이 있는 아파트 전성시대의 유년기를 경험하지 않은 우리 세대는 화장실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썩 상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그랬다. 시골에서는 ‘뒷간’ 중소도시에서는 ‘변소(便所)’라고 불리던 화장실, 그리고 화장실 문에 빨강색과 검정색으로 낙서처럼 써놓은 ‘W.C’라는 단어가 친숙하던 때가 있었다.

 

 88올림픽 무렵부터인가 ‘화장실’이라는 단어로 어느새 친숙하게 바뀌는가 싶었는데 요즘은 아예 그림으로 화장실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관모 쓴 신랑과 비녀 꽂은 신부, 지팡이를 든 신사와 모자를 쓴 멋진 귀부인모습 등을 심벌 화하고 남녀 전용화장실로 구분하여 멋을 부린지도 꽤 오래 전부터이다.

 

호텔이나 고급식당, 고급건물 등이야 이미 최고급 대리석으로 된 화장실로 자연스럽게 바뀌었으나 일반회사에서 고급화된 화장실을 볼 수 있는 예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래 전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직원이 근무하는 전 건물의 화장실을 이태리 대리석으로 치장을 하고 면적도 훨씬 넓히고 고급자재를 사용하여 화장실 문화를 대폭 혁신한다는 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고속도로의 휴게실 화장실도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깨끗해졌는가? 은은한 레몬 향과 함께 휴지도 잘 갖추어져 있고, 물비누, 핸드드라이어, 핸드 타월, 그리고 예쁜 그림과 명언 게시판, 파우다룸, 수유실 등 이러한 변화는 기분을 상쾌하게 할 뿐 아니라 화장실 관리도 꽤나 잘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공공장소를 조금만 벗어나 흔히들 자주 찾는 동네 식당이나 상가 화장실을 잠깐 들여다보면 어떤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심한 악취와 함께 어둡고 컴컴한 불 빛, 소변 후에 버턴을 누르면 물이 아예 나오지 않거나 옆으로 세어 나와 바지를 버리기도 한다. 대변실 안에는 발을 디디기도 겁이 날 정도다. 벽 위쪽에 붙어있는 수조는 고장이 난지 오래 되었고 플라스틱 통에 따로 물을 받아서 바가지로 뒤처리를 하는 풍경은 지금도 흔한 일이다. 이렇게 불결한 화장실을 우린 일상 그냥 못 본채 지나치고 있다. 마치 내 일이 아닌 양 말이다. 플라스틱 휴지통에는 웬 사용한 휴지가 그리도 많이 쌓여있는지? 비누는 다 어디에 있는지 달아빠진 비누조각마저 보이질 않고 있다.

한산도 화장실(냠녀로 구분되었고, 나무조각 울타리가 멋진 모습이었다


수년 전 울릉향우회 산악회원들과 함께 태백산을 다녀오던 때가 생각난다. 여자 화장실 입구에 수십 여 명의 여성들이 긴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여자 두 명이 고개를 숙이고 쭈볏쭈볏 어색한 몸짓으로 들어오면서 실례를 해도 될지 모르겠다면서 남성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들이 북적대는 화장실에 여성이 들어온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들 친절하게 “여자 화장실이 너무 적어서 불편하지요”라고 하면서 그 분들이 무안해 하지 않도록 친절한 배려를 해주는 것을 보았다. 여자화장실을 이제 서야 남자 화장실보다 더 넓힌다는 기사도 나왔다. 여의도나루 역에는 남녀 화장실 비율이 드디어 1:1이 되었다고 한다.

 

1984년 즈음하여 모스크바 공항에 잠깐 기착을 하였다가 파리로 간 적이 있었다. 몹시 급하여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는데 양변기 본체만 달랑 눈에 들어올 뿐 양변기의 좌대와 뚜껑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옆 화장실로 서둘러 옮겨 문을 두들기고 열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느 곳에도 좌대와 뚜껑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죽공장의 회사 화장실이었는데 뻥 뚫린 넓은 공간에 칸막이가 전혀 없는 오픈 화장실이어서 참으로 불편하고 난감해 했던 때가 있었다.

 

지난 11월에는 ‘세계화장실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정도가 되었다. 한국의 화장실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미 러시아, 중국 등에서 체험하려 다녀갔다고 하니 세계화장실협회를 창설한 국가로서 이제는 화장실협회 창설 국가답게 전국에 흩어져있는 엉망진창인 우리네 화장실이 빨리 개선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도동터미날 옆 화장실(색깔, 타일만보아도 우중충하며 어딘가 촌스럽다


우리고향 울릉도의 사정은 어떠한가?

2007년1월17일자 도민일보 김성권 기자의 보도에는 “저동 복합상가내의 공중 화장실의 바닥에는 껌, 담배꽁초, 신문 등이 버려져 있는가 하면 소변기 자동 물 내림 센스가 떨어져 나가 감전위험이 있는데도 수개월째 방치되어있고, 행정당국은 책임만 전가하고 있다고 한다.”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난 간혹 고향을 찾곤 하지만 울릉도의 공중화장실에 무척 관심이 많아 선창의 화장실부터 석포 전망대 입구의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다녀온 바 있다.

도동터미날 옆 화장실 내부



울릉도에서 화장실의 사용 빈도만을 따지자면 도동 터미널 옆과 소공원의 화장실이 아니겠는가? 나머지 여타 화장실은 비교적 깨끗하고 관리도 잘 된 편이나, 이 두 화장실만이라도 전국에서 최고 멋쟁이 화장실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여의나루역’만큼 만이라도 새롭게 만들 수 없는 것일까?  울릉도를 다녀간 관광객들이 “내가 본 최고의 화장실은 울릉도에 있어!”라는 소문이 퍼져나가도록 할 수는 없을까? 요란하게 울릉도를 홍보하지 않아도 화장실 하나만이라도 딱 부러지게 만들어 전국 최고의 화장실 소문만 나도 엄청난 홍보를 보장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곧 삼십만 명, 사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올 것을 생각한다면 제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화장실이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진땀이 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물이 질질 흐르는 화장실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 관리인을 두어서라도 냄새 없고 물기 없는 청결한 화장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수유실에서는 아기 젖을 먹이고 파우다룸에서는 화장을 고치는 그런 여유로운 화장실을 보고 싶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여의나루역과 같은 화장실은 우린 언제나 볼 수 있을 것인가?

 

 

2009년3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