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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by 빠피홍 2023. 1. 14.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대장

 

 

*본 칼럼은 200931일 울사모에 게재한 것으로 현재의 시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지난 2월3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어린이 독도체험관’ 의 개관식이 있어 가 보았다. 다음 세대의 독도를 지켜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지하에 있는 체험관에는 어린이들이 꽤나 관심이 있는 듯 눈을 깜박이면서 이것저것을 만지고 안내인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특히 700분의1로 축소된 독도 모형 앞에는 어린이들이 원을 그리고 둘러 앉아 손가락으로 독도를 가리키며 서로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이 지금은 독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부모의 손에 이끌려 왔을지 모르겠으나 중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었을 때는 또 하나의 열열 독도지킴이가 되지 않겠는가?

 

‘독도를 지켜낸 우리의 조상들’ 이라는 벽면의 해설문에는 신라장군 이사부, 검찰사 이규원, 안용복 장군 그리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의 활약상이 흑백 그림과 함께 간략하게 잘 표현되어 있었다.

 

“1952년7월말, 홍순칠은 울릉도 경찰서 마당 한쪽에 ‘시마네현 오끼군 다케시마(島根縣隱岐郡竹島)’라고 쓴 푯말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분노했어요. 이 때부터 홍순칠은 독도를 지키기로 결심했어요. 특무상사 출신인 그는 청년들을 모아 독도의용수비대를 만들고 개인 재산을 털어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였어요. 1953년4월 독도에 처음 발을 디딘 이후 홍순칠은 독도의용수비대를 이끌면서 일본해상 보안청 순시선과 수차례의 총격전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독도를 지켜냈어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세 번째의 기념사업회인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가 지난 12월에 오랜 기간의 준비기간을 거치고 발족하게 되었다. 첫 번째 기념사업회인 ‘한국전쟁 기념사업회’ 와 두 번째인 광주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에 이은 세 번째이다.

 

2005년 국회에서 통과되어 곧 사업회가 출항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랜 진통 끝에 이제 출범하게 된 것이다. 33인의 대원들은 대부분 이미 고인이 되었으며, 현재 생존해 있는 대원들은 10여명 내외뿐이다. 살아생전에 홍순칠 대장이 그토록 갈망하던 의용수비대의 사업회가 마침내 만들어 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법으로 만든 기념사업회로서는 당당히 세 번째인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인가?

 

조그만 섬 울릉도 출신 33명의 투철한 애국심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는 일본에게 뺏겨버리고 말았을지 모를 일이 아닌가? 때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 정부가 이들을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념하겠다고 하여 기축년 올해부터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이 초대회장이 되어 임원진을 구성하고 사무국을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고 하니 우리 모두들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생존대원들은 물론이고 유가족들에게도 마땅한 예우를 해 줄 것으로 본다.

 

울릉도에 살았던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들은 홍순칠 대장을 포함한 33인의 대원들 활약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일곱, 여덟 살 즈음 수협 밑에 있던 이층 일본식 집이 대원들의 본부였던 것 같다. 대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것을 보았으며, 독도에서 돌아오는 배를 부두에서 몇 번이고 본적도 있다. 우리 모두의 눈으로 그들의 활약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던가?

 

독도의용수비대원들

 

기념사업회가 이제부터 예산을 짜고 의용수비대 기념사업을 본격화하겠지만 우리 울릉군에서도 남의 일인 마냥 뒷짐을 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기념사업회와 보조를 맞추어 의용수비대의 활약상을 적극 알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상이나 기념공원 하나 변변하게 없는 울릉도에 의용수비대를 기념하는 공원을 멋지게 만들어서 울릉도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독도의 소중함을 알리게 함은 물론이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도 이들의 참 뜻을 기리게 하는 명소를 만들었으면 한다. 결국 50년 100년 후에는 이 공원이 역사가 되고 문화유적이 되어 많은 참배객이 방문하는 성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