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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미나라’ 공화국

by 빠피홍 2023. 1. 8.

남이섬 안내판

 

 

*본 칼럼은 2009313일 울사모에 게재한 것으로 현재의 시각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나미나라’ 공화국

 

스무 살 무렵이다. 공연히 시비를 걸고 싶고 무작정 사회에 도전하고 싶은 그런 나이여서인지는 몰라도 난 꽤나 불만이 많은 축에 들었다. 이상은 높고 현실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그 또래의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청춘의 아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65년도를 전후하여 겨울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한번 내려가려면 서울역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통일호 입석을 타고 여섯, 일곱 시간 걸려서 대구에 도착하고, 다시 버스를 두어 시간 달려서 포항에 도착했던 것 같다.

 

어느 겨울에는 왜 그렇게 날씨가 심술을 부렸던지 보름 이상이나 발이 묶인 채로 부두 옆에 있던 ‘항구식당’에서 죽치고 앉아 낮부터 막걸리를 마셔대곤 했다. 언제 청룡호가 출항할지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펑펑 내리던 눈과 매서운 파도에 귀향의 기대는 애시 당초 접고 낮술을 마셔대던 그런 때가 있었다.

 

우린 그 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많은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연상 막걸리를 마셔대면서 말이다. 우리가 사회에 나오면 그 땐 울릉도를 ‘우산국’으로 독립을 시키자고 말이다. 우산국으로 독립을 하여 영해선도 확보하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가까운 나라와 국교를 수립하여 최소한 큰 배라도 취항케 하여 연중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도록 하자고. 그리고, 국제자본을 들여와서 도로도 만들고, 항구도 만들어야 한다며 답답한 현실 앞에 열을 올리며 고향으로 들어가려는 유학생들과 함께 열변을 토하곤 했었다.


2009년2월28일자 중앙일보에 “나미나라는 자연. 자유를 팝니다” 라는 타이틀로 ‘남이섬’이 독립공화국 선포 3주년 축제를 연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2006년3월1일 ‘겨울연가’ 촬영지로 유명한 ‘남이섬’이 ‘나미나라 공화국(Naminara Republic)’으로 재탄생된 지가 3년째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수반을 대통령제로 할지, 내각수반으로 할지는 아직 미정이라는 것 외에는 나라의 골격은 다 갖추어진 셈이다. 독립선언문 발표에 이어 국기(國旗), 국가(國歌), 화폐, 여권, 전화카드를 갖추고 일본 대사관을 포함한 20여 개국의 대사도 곧 임명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여권과 화폐, 우표는 남이섬 공화국에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나미나라 국기
나미나라 화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라, 상상 속의 세상을 만들었다. 하나의 금기를 깼다고 생각한다.” 고 갈파하는 이는 바로 남이섬의 CEO 강우현 대표다. 1953년 충북 단양출신으로 홍익대 미대를 나온 디자이너이라고 한다. 그는 2001년 취임한 이래로 상상과 예술로 남이섬을 열심히 디자인하고 있다. 향락시설이 있던 자리에는 나무와 꽃을 심었다. 이익단체들의 엄청난 저항을 무릅쓰고 말이다.

 

“나는 하찮은 것이 좋다. 시시한 것은 더욱 좋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이 좋다.” 라고 그는 나직하게, 그리고 해맑은 웃음으로 확신에 찬 어조로 조용히 ‘남이섬의 미래 모습’을 이야기한다.

 

2005년도 관광객 165만 명에서 올해는 200만 명을 예상하고 있다 한다.

‘남이섬’은 늘어나는 관광객들에게 시설이 아닌 ‘꿈’을 파는 섬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온갖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시설을 늘리는 전략에서 벗어나 나무와 꽃을 한 포기라도 더 심는 자연친화적인 섬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볼 것 없던 ‘남이섬’이 왜 그토록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을까?
최근 아내와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배를 타기위해 두어 시간 기다렸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기다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남이섬’ 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기다림을 알아야만 배를 탈 수 있다. 그리고 낭만이 가득한 추억거리인  별빛과 고요함, 숲, 그리고 왠지 사랑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가슴 떨리는 예감, 그리고 일본인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겨울연가’의 모정(慕情) 같은 것들이 기다림의 저변에 깔려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울릉도를 ‘우산국’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모두는 울릉도가 오래 전부터 ‘우산국’ 이었다는 이름에 모두들 익숙해 있지 않는가?  ‘남이섬’이 13만평되는 작은 섬이라면 ‘울릉도’는 엄청난 큰 섬이 아닌가? ‘남이섬’이 갖고 있는 온갖 매력에 더하여 기다림과 가슴 설레는 푸른 바다가 있지 않는가 말이다.

 

강우현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울릉도의 구석구석에는 하찮은 것도 많고, 시시한 것도 많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들도 너무나 많다. 그냥 내팽개쳐져 있는 돌들, 푸른 풀잎들, 공사가 끝나고 내동댕이쳐 있는 폐자재들, 폐 어구들도 그렇다. 그리고 도무지 관광섬 이기에는 지저분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강우현이 읊조리고 있듯이 “하찮은 것, 시시한 것, 무관심한 것들”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 울릉도도 이제부터 하나씩 디자인해 가면 어떨는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도 울릉도를 '상상의 나라' ‘우산국(于山國)’으로 선포하고 독도(獨島)를 자치도(自治島)로 편입시키고, 전 세계의 대사를 임명하고 관광객 2백만명을 유치하는 등, 꿈의 나래를 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냥 씁쓰레한 표정으로 망상에 젖어 본다.

 

 

2009-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