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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고향(故鄕)에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by 빠피홍 2022. 7. 23.

▲나의 숙소였던 용바위골 농원이다.

 

 

고향(故鄕)에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비록 짧은 고향 나들이였지만 혼자 고향을 찾았던 경험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융숭한 대접을 받은듯하여 울릉도를 떠나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부담감 때문이었다. 생업에 바쁜 그들에게 공연히 연락을 취함으로써 시간과 돈의 부담을 끼치게 만든 것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먼저 숙소가 큰 문제다. 관광시즌이어서 호텔이나 민박이나 정신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나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가 없다. 하루 15만원만 잡아도 나흘이면 60만원이다. 말이 고향이지 며칠 편하게 쉴 수 있는 친척집도 없는 형편이다. 저동 중간모시게 ‘용바위골 농원’에 있는 김갑출 회장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없었다면 몇 차례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둘은 4박5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같이하다시피 했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완벽히 갖추어진 주방에서 스프와 야채, 과일, 빵, 나또, 캡슐커피로 아침을 열면서 서로가 미처 몰랐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쉴 곳은 깔끔하게 준비된 화장실이 딸린 2인용 침대 룸이었다. 저녁이면 김회장이 직접 담근 ‘마가목주’로 피로를 풀었다. 창문 너머로는 바로 발 아래인양 ‘촛대암’이 눈에 들어오고 갈매기와 꿩들이 제 집 안마당인양 스스럼없이 잔디밭을 휘젓고 다닌다. 마가목 열매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7월2일 토요일 이튿날이다.

향우회 임종현 회장은 하룻밤만 자고 오후 배로 떠난다고 한다. 김회장의 배려로 임회장, 태하의 안영학과 함께 저동약국 골목안의 ‘따개비국수’를 먹었다. 말로만 듣던 따개비국수다. 짙은 국물에 따개비의 진수를 맛보는 느낌이다. 난 거저 입만 갖고 다니는 신세로 전락된 기분이다.

 

 

안영학(울릉군농업인단체협의회)회장은 학창시절부터 서울에서 젊은 시절을 같이 보냈던 울릉도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친구다. 태하동에 살고 있는데 차를 몰고 저동까지 건너온 것이다. 몇 군데 둘러보고 태하동으로 가자고 한다. 와다리 터널을 지났다. 공사가 완공된 후 처음으로 온 셈이다. 바로 옆에 있는 ‘용굴’이 생각났다. 깜깜했던 ‘용굴’을 한 바퀴 돌고나왔던 그 곳, 내 키보다 더 큰 ‘요왕대’가 길을 막아 다시 돌아 나왔던 옛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어느새 석포다.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을 지나 어딘가로 날 데려간다. 발해탐사선 대원이었던 이덕영 선장의 동생이 머무는 쉼터였다. 냉커피를 공짜로 얻어 마시고 잠시 쉬었다. 내 비록 일찍 울릉도를 떠나있었으나 ‘이덕영 선장’이 어떻게 해서 파도에 휩쓸려 죽음을 맞이했는지 잘 알고 있던 터라 정말 반가웠다. 벽에는 이 선장과 함께 사망한 동료들의 사진과 신문 스크랩을 크게 확대하여 만든 패널이 몇 장 둘러쳐져있다. 내 땅에 자그만 동상이라도 만들고 싶어도 허가를 얻을 수 없다는 그 아우의 푸념에 나라도 도우고 싶은 심정이다.

 

나리분지의 ‘산마을식당’에 들어가자 한귀숙 사장이 안영학 회장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고 막걸리와 홍감자 부침개를 내놓는다. 이곳은 내게 조껍데기 막걸리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이 또한 한사코 돈을 받지 않는다. 난 그냥 머쓱해진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평소 안회장이 베푼 후덕에 대한 예우로 보인다.

평리에 있는 ‘예림원’의 박경원 원장과도 만나 정자에 앉아 냉커피를 얻어 마시며 옛 이야기도 나누었다.

 

▲예림원 박경원 원장, 나와는 오랜 지기다

안회장이 거주하고 있는 태하동에 도착하여 식당에 자리를 잡자 몇몇 현지인들이 모여든다. 그 중에 김병렬 교수라는 분이 있었다. 이번 울릉군수 당선자 인수위원회에 이름이 있어 궁금했던 차였는데 마침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남양리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얼마 전 TV에서 본 그 분이었다.

 

본인이 살고 있는 남양리의 ‘버섯집’을 거쳐 어두운 밤길을 왔다. 그의 부인이 친절하게 정원을 소개해준다. 저동으로 오는 길은 김교수가 직접 차를 몰고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오늘은 안회장이 오후 시간을 몽땅 내게 내어주었고 모든 비용도 부담했다.

 

사흘째 날이다.

오늘은 ‘울사모카페’의 후임 예정자에게 설명하고 업무를 전수하는 날이다. 점심시간에 저동약국 앞의 식당에서 오징어 내장탕과 막걸리로 서로를 확인하며 석포로 이동했다. 그의 집과 인근 카페에서 두 대의 노트북을 놓고 우린 서로 미래를 향한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같이 숙소에 들어와 밤 12시까지 마가목주를 안주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꼬박 열 두 시간 그와 같이 한 셈이다.

 

나흘째 되는 날이다.

태하의 안영학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냥 보내기가 아쉽다고 봉래폭포 쪽에 토종닭요리가 끝내준다고 하며 한 번 더 모이자고 했다. 닭요리가 이렇게 맛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삶은 닭을 전부 찢어서 큰 감자와 함께 내놓은 단순한 요리였는데 다섯명이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야산에 풀어놓고 키운 토종닭이라니 제대로 된 진수를 맛보는 것 같다. ‘성봉장 가든’에서의 추억 또한 고이 간직할 것이다.

 

저녁에는 전 수협조합장을 역임한 김성호씨의 초대로 호주에서 식당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이름이 묘한 식당이었는데 옛 울릉도와는 거리가 먼 퓨전요리를 대접받았다. 후식으로는 멜론에 하몽을 얹어 내놓는데 “아! 울릉도도 이제 많이 바뀌었구나. 부둣가 좌판에 걸터앉아 오징어 몇 마리 쓸어놓고 소주를 마시던 그런 울릉도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남한권 군수도 자리를 해주었다. 궁도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호씨가 당일 행사가 있는 바쁜 와중에도 우정 날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어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저동 나의 숙소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상봉을 기뻐하는 정종태 전 군수님

닷새째 오늘은 육지로 떠나는 날이다.

어제 육지에서 들어왔다는 정종태 전 군수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울릉도에 오면 꼭 연락을 해야 한다는 다짐이 몇 차례 있었던 터라 전화를 드리자마자 저동 숙소까지 총알같이 달려오셨다. 도동 자택에 잠깐 들렸다가 점심을 하자고 한다. 사모님과 함께 저동 회센타에 들어갔다. 난 두시 배로 떠나야 되는 상황이다. 수족관에서 싱싱하게 노니는 다금바리 두 마리를 주문하신다. 오징어 회에 청하 한잔이면 충분할 텐데 이 비싼 다금바리가 왜 필요하겠는가? 내가 끼어들어 만류할 틈도 없다.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를 어쩌나. 내가 팔십 중반이신 노인으로부터 수 십 만원이 되는 이런 대접을 받는 게 가당치나 한 일인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친다. 나이탓이리라.

 

정시에 배가 출항한다.

어느새 울릉도가 아득히 멀어지고 있다. 4년 만에 다시 온 내 고향 울릉도. 4박5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온통 대접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숙소부터 커피며 조껍데기 술과 감자전, 토종닭, 다금바리 생선회 등 작은 대접에서부터 큰 대접까지 신세만 지고 떠나게 되는 심정이 참으로 묘하다. 뭔가 조그만 보답이라도 해야 할 터인데 너무 고마웠던 것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간다.

 

 

@2022년7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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