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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경종 선생

by 빠피홍 2022. 3. 30.

* 2022년3월28일자 조선일보와 경북매일 등에 ‘만덕호 사건’ 기사가 상세하게 나와 있어 2007년6월에 울사모에 발표했던 만덕호 사건의 천부초등 이경종 선생에 대한 칼럼을 옮겨 싣습니다.

 

▲ 천부초등학교 내에 있는 이 경종 선생의 사도비

 

 

이 경종 선생

 

 

지난 5월16일 조간신문에 “제자 위해 온몸 던진… 아, 선생님!”의 기사가 났다. 15일이 스승의 날이어서 때맞춰 낸 기사인가 했더니 교육인적자원부가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전국에 흩어져있는 사도비(師道碑)의 현황을 담은 책자를 발간하여 이를 기사화한 것이었다. 책 이름은 ‘영원한 만남, 우리의 스승’이었다. 사도비라고 하였으니 이 무슨 뜻인지 인생 60이 넘도록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즉 ‘참 스승이 간 길을 기리는 기념비’라는 그런 의미가 아닐는지? 한문이 부기되어 있지 않았다면 도무지 본래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사도비가 전국에 200여 곳이나 있다고 한다.

 

가을 소풍 때 산을 오르다 굴러 내려오던 돌덩이를 온몸으로 막아 제자들을 구하고 순직한 전북 성내초교의 한상신 교사, 물에 빠진 열 살짜리 제자를 구하고 순직한 부산 구포초교의 이춘길 교사, 일제의 말살 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한글을 가르치다 남해의 한 섬으로 유배된 우송 고광욱 선생,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을 일깨우다 교사로 강등되고 투옥까지 됐지만 장학금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한 전북 산서초교 오진상 교장의 사례가 나와 있다.

 

이 책을 읽고 싶어 교보문구 홈페이지에서 책 주문을 시도하였으나 책 이름이 아직 등록되지 않아서인지 실패하였다. 며칠 있다가 다시 시도해보기로 하자. 그 책 속에 천부의 ‘만덕호’ 이야기가 기술되어있는지 궁금해서이다.

언제였든가 초등학교 친구인 이용기가 ‘만덕호’ 이야기를 실감나게 설명하던 기억이 났다. 그랬다. 천부초등학교 이경종 선생이었다. 1976년1월17일 오후4시경 도동에 갔다가 천부로 돌아오는 만덕호가 항구로 들어오기 직전에 바위에 부딪쳐 배가 난파되었고 이 때 초등학생 두 명을 구하여 바위로 옮겨놓고서는 정작 본인은 지쳐서 순직한 참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경종 선생은 대구가 고향이고 대구사범을 나와서 오지인 울릉도, 그것도 도동에서 한참 떨어진 천부의 6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고, 제자 두 명이 입학금이 없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자 학모로부터 금전을 차용하였고, 이를 도동에 있는 농협에 입학금을 대신 납부하고 돌아오는 도중에 일어난 참변이었다. 벌써 30년이 지난 세월이다.

 

이경종(李京鐘)선생 순직비가 이끼가 낀 채, 낙엽이 뒹구는 속에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오늘 천부에 와서 천부초등학교에 있는 이경종 선생의 사도비 앞에 서 있다. 76년4월 국민훈장 목련장이 추서되었고 그 해 경북도 교육위원회에서 순직비를 건립하여 스승의 참 사랑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숙연하다 못해 세찬 겨울바람의 천부 앞 바다가 자꾸만 떠오른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높새바람이 분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모습이 있다. 우는 바람 고요히 귀를 기울이면 애끊는 흐느낌이 들려온다.”

 

이경종 선생의 ‘사도비’ 가 천부초등학교 안에 있다는 안내 표시판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울릉도의 동네를 소개하는 안내판도 좋고, 명소 관광지 안내판도 좋지만 참된 스승을 기리는 사도비 안내판이 없다는 것이 못내 씁쓸하기만 하다.

 

 

(2007년6월12일)

2022년3월28일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에 나온 "울릉도 만덕호 사건" 기사입니다.

https://cafe.naver.com/kulsamo/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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