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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군수 관사의 겹벚꽃

by 빠피홍 2022. 3. 17.

▲ 울릉군수관사  --  텅 빈 채로 적막감마저 도는 울릉군수 관사에 벚꽃이 만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군수 관사의 겹벚꽃

 

 

대전 대흥동 성당 맞은편의 구 국립농산물 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조선일보 9월27일자 기사가 눈에 띈다.

최근에 와서 근대문화유산에 관한 기사가 부쩍 눈에 많이 띄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거듭난 구 경성재판소, 부산 근대역사관이 된 동척 부산지점, 윤이상 음악축제가 열리는 옛 통영군청 건물 등이 근대유산을 유지하면서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목포에도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하여 카페로 활용하는 ‘행복이 가득한 집’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막집이었다는 경북예천의 삼강주막을 경북도가 12억원의 예산으로 복원하기로 하였다는 내용과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철거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 최근에 와서 이들 근대문화유산을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등등이 근대문화유산의 기사 말미에는 항상 한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허기야 오죽하였으면 전 유흥준 문화재청장은 2007년1월경, 고급 건축물을 지으면 위화감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도 100년 이상 길이 남을 멋진 건축물이 나와야 한다고 설파했을까? 옛 것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을까? 역사는 승계되는 것이어서 오늘 현재의 건축물이 100년 후에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되어 전 세계인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300년이 넘는 베르사유 궁전, 노트르담 성당 등 무수히 많은 수 백 년 이상 된 서구의 많은 건축물들이 훌륭한 문화유산이 되어 엄청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한 말이 아니었을까. 



울릉군수 관사를 보존할 것이냐, 철폐할 것이냐는 문제가 2005년 7월경 군수선거가 끝난 이후에 군민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았다. 군수 관사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정윤열 군수의 공약사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수 취임식이 끝난 바로 그날에도 군민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노인정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 헐어버리고 공원으로 해야 한다, 그냥 보존해야 한다는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보고 들었다.

군수 관사는 울릉도에서 제일 큰 일제 강점기의 유산 건축물이다. 난 이곳에 어린 유년시절을 수년간 보내었다. 아버님이 1950년대 한국전쟁의 전후 3년7개월을 울릉군수로 재직하였기 때문이었다.

관사의 정원 한 가운데 있던 자그만 연못, 언제나 맑은 자태로 탐스럽게 피어있던 수국, 붉은 색을 약간 띄는 잎을 가진 겹벚꽃, 부엌 뒤쪽에는 U자 형의 방공호,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솨솨하고 소리를 내던 대나무 숲, 그리고 우뭇가사리로 만든 우묵이 맑은 샘물과 함께 큰 항아리에 담겨있고, 항상 철철 흘러넘치던 맑은 샘물........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걸린 일제의 올빼미 전화기, 응접실에서는 언제나 진지한 표정으로 베틀을 돌리며 천을 짜고 계시던 어머님 모습 등등 내겐 참으로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군수 관사 앞에는 3,4층의 공영주차장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관사의 정면을 막고 버티고 있어서 미관과 조망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울릉도에서는 최고로 가는 게스트하우스 역할도 하지 않았던가? 도지사가 올 때 그러했고, 박정희장군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10 수년 전 서울에 출장을 온 민선 초대군수인 정종태 선배에게 “이 번에 고향가면 꼭 군수 관사에 한번 들리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옛날 그대로라면서 꼭 다녀가라고 하였건만 종내 들어 가보지도 못한 채 철거의 소용돌이 속에 말없이 서 있는 울릉군수 관사, 내가 살던 그 추억의 집이 그립다.

일제 때의 잔재라고 하여 철거를 해야 한다면 이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하나 잃어버리는 무지의 소치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엄연한 역사의 잔존물이며 반면거울이 되는 우리 후손의 유산이지 않는가?

노인정이던, 도서관이던, 소공원이건, 어린이 놀이터건 관민이 함께 차분하게 머리를 맞대어 관사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하고 무엇으로 활용하는 것이 제일 좋을지를 진지하게 토론해야 될 것이다. 어떻게 보존하면 300년쯤 되는 울릉도의 문화유산으로 영원히 남길 수 있을지 말이다.

2008년9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