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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봄눈

by 빠피홍 2022. 3. 21.

▲ 거실에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봄눈

 

4월이 내일모레인데 눈이 꽤나 많이 내린다. 어제 밤부터 내렸는가본데 날씨가 포근한 탓에 내리자마자 이내 녹아버린다. 대선이 끝나고 며칠 되지 않아 내린 봄눈이어서 일까 새롭고 묘한 느낌이다. 거실에 앉아 눈 내리는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면서 어느새 막걸리 잔을 잡는 내 모습에 짐짓 놀라기도 하지만 어느새 입가엔 미소가 돈다.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뒷방으로 내려앉은 노인이 되어 봄눈 녹듯 차분한 마음이 되어서이다.

 

지난 3월9일 대통령선거 개표만큼 스릴 있는 드라마가 또 있었을까? 자정을 넘어서면서 두 주인공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시소게임에 내 일찍 이런 절망과 환희의 시간이 교차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난 공중파의 개표방송을 털어놓고 음원을 죽인 채 유튜브 ‘정광용TV’의 생중계방송을 보면서 몇 시간을 마음 졸이며 보냈다. 투박한 경상도말로 질펀하게 늘어놓는 그의 진행이 코믹하기도 하고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전이 되는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합을 넣었던 나였다.

 

선거기간 내내 신문의 관심부분만 골라서 볼 뿐 TV는 잘 보지 않았다. 방송에 나오는 패널 들의 온갖 궤변을 보고 듣는다는 것이 내겐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짜증스러운 선거기간이었다. 결과가 확정되자 이제 문재인의 이 지긋지긋한 과대망상 정치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는데 안도를 하며 5년간 받아왔던 스트레스가 일거에 녹아내리는 듯 했다.

 

선거가 끝난 며칠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제 무언가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부터 모든 걸 내려놓자. 후배들이 알아서 잘 해주질 않겠는가? 청와대를 광화문으로 옮기든 용산으로 옮기든 인수위원회에 서울법대 출신들로 가득 채우든 말든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문재인 정권보다야 백배천배 낫지 않겠는가? 이제 곧 팔십이 되어가는 처지에 정치권의 일희일비를 또다시 가슴조리며 보고 들을 필요가 있겠는가? 나 혼자 모든 짐을 지듯 꿍꿍 앓던 나의 허상을 이제 눈 녹듯이 녹여버리자는데 귀결 되었다. 정치권의 갑론을박과 시시비비는 듣지도 보지도 않기로 했다. 그저 결과만 확인하기로 했다. 그들을 믿고 맡기기로 한 때문이다.

 

수 십 개 넘게 보던 유튜브 채널의 구독버턴을 대부분 취소로 세팅하고 몇 개만 남겨두었는데 그래도 아직 많다. 신인균의 국방TV, 김영호교수의 세상읽기, 박찬종TV, 조갑제TV, 최병묵의 FACT, 11시 김광일 쇼, 정광용TV, 이춘근의 국제정치, 와이타임즈 그리고 정규재 텐텐뉴스 등인데 이 또한 섬네일을 봐가면서 보기로 하고 그 외 몇 개 채널도 건별로 선별하여 구독하는 걸로 결정했다. TV뉴스는 저녁 9시의 TV조선을 주로 보는데 이 또한 골라서 보기로 했다. 시시콜콜 가십 같은 것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좋은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정원에 가득했던 봄눈이 모두 녹아버렸다. 진보학자인 전북대학 강준만 교수의 인터뷰처럼 지난 5년간 위선과 오만 그리고 내로남불로 점철되었던 이 정권이 오늘의 봄눈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저 기쁘고 마음 한 곳에 응어리져있던 ‘내로남불’ 5년의 묵은 가래를 이제 시원하게 뱉어도 될 듯하다. 누가 내게 정치에 관해 물어온다면 난 답하리다. 뒷방으로 건너 온지 오래되었다고.

 

* 강준만 교수의 인터뷰 (2020년10월25일 중앙일보)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 두고 말았다...

굳이 지적할 것도 없이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3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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