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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창호와 박 경원

by 빠피홍 2022. 2. 10.

▲ 섬개야광나무 옆에 서있는 박 경원 원장

 

 

이 창호와 박 경원

 

 

지난 3월26일 거제도의 해안선을 둘러보면서 외도에 다녀왔다. 주위사람들로부터 ‘외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마침 날씨가 쾌청하여 모두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약간 쌀쌀한 날씨임에도 겹동백과 홋동백, 핑크빛 동백이 한창이다. 외도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손님맞이라도 하는 듯 붉은 꽃잎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고 상쾌한 공기가 좋다.

 

외도는 동서도 4만여평의 섬에 1만3천평을 개간하여 일궈 놓은 식물공원이다. 식물의 종류가 750여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거제도 일대의 관광지 중에서 꼭 들리고 싶어 하는 으뜸 관광지이다.

 

설립자 ‘이창호’씨는 고려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하였고  69년경 바다낚시를 갔다가 풍랑으로 인해 외도에 피신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부인 최호숙씨와 함께 갖은 노력으로 오늘의 식물원이 된 각종 묘목을 심었고 이를 가꾼 지 30 여년 만에 황금알을 낳는 해상식물원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외도는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남해의 ‘해금강’이 바로 지척이고 한려 해상 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쪽빛 남해바다와 더불어 풍관이 수려하다. 위치 또한 거제도에서 불과 4km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 출항하는 선편 외에도 하루에도 수십 척의 유람선이 외도와 해금강을 오가는 황금어항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같다. 1인당 1만5천원의 유람선 이용료, 외도 입장료 8천원, 연평균 입장객이 1백만을 넘은 지가 이미 오래 전이라고 하니 단순계산을 하여도 유람선 이용료 100억원과 입장료 80억원 정도가 연간 수입이 되는 셈이다. 이외에도 식당, 숙박업 등 고용효과 또한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창호 부부가 개발해 놓은 식물원이 이제 와서는 거제도 일대에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효자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울릉도의 북면 현포리에는 2007년에 개장된 ‘울릉분재식물원’이 있다. 이제는 ‘울릉예림원’ 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는 작업이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이곳의 개척자가 바로 울릉도 해양경찰 출신의 박 경원 원장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찌어찌 하다가 울릉도에 전근을 오게 되었고 울릉도에 미쳐서 이곳에 온지 7년 만에 현포 평리에 꿈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4000평 규모의 예림원에 박 경원 원장의 정성이 깃든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하나씩 둘씩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해에 외도가 있다면 동해에는 울릉도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울릉도 자생 식물 분재가 300여 점이나 모였다. 이 중에는 100년에서 500년이나 되는 분재가 27점이나 된다고 한다. 야생화 분재도 약 350점이 된다고 한다. 몽돌 해변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멀리 공암도 보인다. 풍관이 좋다. 이뿐만이 아니다. 울릉도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여러 조형물도 추억거리 만들기에 일조를 하고 있다. 페루의 리마 교외에 있는 피치카막 계곡의 ‘사랑바위’처럼 이곳에도 연인바위가 연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한 박 원장 특유의 목조각 작품과 사진작품, 서예작품 등 볼거리가 많아 종합적인 예술원과 같은 곳이다. 4000평이 아니라 4만평으로 넓혀서 이곳을 울릉도의 최고명소로 만드는 날, ‘울릉예림원’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연간 2십만명이 아니라 100여 만명이 될 때, 외도의 이창호처럼 우리는 박 경원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는 진정 울릉도를 사랑했고, 울릉도의 먹거리를 해결해준 우리의 은인이었다고 말이다.

 

 

2008년4월2일에

 

 

[후기] 본 글은 2008년4월2일 울사모 카페에 게재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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