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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향(故鄕)

by 빠피홍 2022. 2. 8.

 

 

고향(故鄕)

 

 

대한민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설국(雪國)울릉도에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120cm가량의 눈이 쌓여 성인봉(해발 987m)등 높은 산들이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었다. 울릉도는 이날 성인봉, 말잔등(해발 968m), 미륵산(해발 901m)등 해발 900m가 넘는 높은 산에는 20~30cm의 눈이 쌓였으며 나리분지 등 산간 마을에도 5~10cm의 눈이 가득 쌓여 겨울을 실감나게 했다(경북매일/ 2011-12-2)

 

성인봉 먼 자락에 초설(初雪)이 내렸다는 소식에 공연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TV에서 흘러나오는 CF의 배경 멜로디에도 간혹 전율을 느끼며 소스라쳐 놀라곤 하는 처지이고 보니 태생이 외로운 섬 출신인지라 남들보다 감수성이 민감한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적의 감동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것 같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 민망스러울 때도 있다.

 

정말이지 낙엽 한 잎과 감미로운 멜로디 한 소절 그리고 하얀 눈에 이리도 민감해 하는 내가 때론 의아스러울 때가 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신기해한다. 아직도 당신은 감수성 많은 이십대 청년이라고 말이다. 가수 이문세가 어느 광고에서 들릴 듯 말 듯 잔잔히 깔아주는 멜로디에 신민아와 원빈의 맥심커피 T.O.P 광고는 깊은 내 심장 속에서 무언가 애잔한 연민의 정이 솟아나곤 한다. 칠십 나이를 목전에 둔 처지임에도 여전히 난 문학청년 같은 애틋한 감성이 살아있는 것 같다.

 

지나쳐 가는 일상의 조그만 것들로 인해 이렇게 마음의 파장이 일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초등학교를 끝으로 일찍 고향을 떠나온 탓일지 모르겠다. 더욱이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동해의 외로운 섬이 그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침저녁으로 약간 쌀쌀하긴 하나 아직은 겨울의 내음이 와 닿지 못하였는데 올해 들어 울릉도에 첫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텔레비전에서 나온다. 방송이나 신문에‘울’자만 보여도 혹여‘울릉도’소식은 아닌지,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가슴이 벌렁대는 걸 보면 고향에 대한 연민이 꽤나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그리운 고향임에도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고향 섬’이 늘 안개 자욱한 ‘환상의 섬’으로 저만치 멀리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환갑이 지나고 나서야 몇 년에 한번 정도 찾게 되었지만 고향은 아직도 가까이 있는 듯하면서도 먼, 그리고 어딘가 어색한 이방의 외딴 섬 같은 느낌은 나만의 공연한 상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향이 고향답게 거기에 존재해야 하고 찾아가고 싶은 나만의 이유는 무엇일까?

 

 

산천과 풍물의 정겨움이 옛 추억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옛날 도동항에 정박해 있던‘금파호’와‘청룡호’대신에‘한겨레호’가 터미널에 정박해 있어 뱃고동 소리의 정겨움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지만 그래도 그 정취는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하시게’에 몸을 싣고 본선에 가까이 다가서면 스피커에 흘러나오는‘울릉도 트위스트’와‘동백아가씨’의 노래 가락이 가슴 저리는 이별의 묘한 흥분으로 엄습해왔다. 남아있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회자정리(會者定離)’의 모습은 분명 그리움의 정취(情趣)일 터이다.

 

도동항의 오른쪽 끝 갯바위에서 “연락선 온다!”고 고함을 치면서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곤 했던 그 곳도 아직은 흔적이 남아있어 좋다. 바위에 올라가 두 손으로 코를 잡고 다이빙하던 그 때의 그 바위도 세월의 무상함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대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반갑고 오랜만에 찾은 나를 반기는듯하여 더욱 정겹다.

 

군수관사와 이영관 어르신의 옛 집, 그리고 읍사무소 뒤에 남아있는 빨간 양철지붕에 나의 동공이 커짐은 내가 이곳 섬에서 태어났고 유년시절을 보냈음을 확인시켜주는 증거품은 아닐는지?

 

친구들과 어르신들이 현존하기 때문은 아닐까?

 

청 장년기에는 도회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하느라 고향 친구들과도 자주 접촉을 못하였던 우리들 세대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고향의 친구들도 보고 싶고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어렸을 적보다 오히려 더 자주 안부를 묻곤 했다.

우리 친구들만 해도 그렇다. 학교생활 6년 내내 말 한마디 건넌 적이 없었던 여자 친구들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짝을 찾고 아이를 가진 이후에야 스스럼없이 모여 밤 세워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는 뻔순이 뻔돌이로 변모해 왔다.

대부분 육지로 떠났지만 그래도 몇몇은 우리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 곳에 남아있어 좋지 않는가. 술잔을 기울며 옛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더 더욱 정겨운 고향이 아니겠는가.

 

도동 거리를 스쳐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그래도 이름까지 기억해 낼 수 있는 어르신들과 나를 알아보는 선후배가 있어서 고향에 온 느낌을 실감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저동리의 박정희장군 기념비 앞쪽으로 가는데 웬 할머니가 쭈빗쭈빗 하면서 아는 채 했고 우린 옛날의 기억으로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 그리운 사람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청장년 시절을 거치며 서로 좋아했던 연인과 산과 들로 다니면서 데이트라도 한 경험이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이미 이만큼 와 버린 세월 속에서 옛 연인들과의 아련한 추억이 마음 어느 한구석에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하고 싶은 것도 하나의 이유일지 모르겠다. 앞이 캄캄한 미래에 서로를 정 하나만으로 의지하고 미래를 꿈꾸다 어느 날 갑자기 육지로 떠나버린 수많은 연인들의 잔영(殘影)이 부두와 마을 구석구석에 깔려있어 이의 채취를 맡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른다.

한쪽은 육지에서 한쪽은 고향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어도 혹시나 우연히 고향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또 어떨까?

 

내게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있어 이 골목 저 골목을 거닐면서 ‘내 젊은 날의 초상’을 더듬고 그려보는 것이 진정 고향은 아닐지 …………

 

 

2011-12-2

 

[후기] 이 글은 11년 전인 2011년12월2일 경북매일의 눈 내린 울릉도의 기사를 보고 블로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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