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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1967년의 ‘십 원’

by 빠피홍 2022. 1. 18.

▲ 1967년 일기장 안에 숨겨저 있던 '십 원' 지폐

 

1967년의 ‘십 원’

 

 

회상록(回想錄)을 쓰려고 지난 일기장을 펼치자 ‘십 원’이라고 쓰인 지폐 한 장이 나왔다. 1967년 일기장 속에서였다. 난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깜작 놀랐다. 내가 20대에 통용되었던 ‘원’ 표시 지폐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모습을 보자 오랫동안 깊이 숨겨놓았던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화들짝 놀라면서 어머님이 떠올랐다.

 

마침 1966년 일기장을 훑어보는 중에 12월22일자 어머니와의 대화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돈과 어머니가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다. 아래가 그 내용이다.

 

“안경점에 가서 엄마 안경을 사고 내 안경은 유리를 새로 갈아 끼웠다. 그리고 여비를 좀 달라고 하자 2천원을 주었다.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엄마가 돈을 세면서 ”열 다섯“하고 천오백원을 셌을 때 내 눈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열 여섯, 열 일곱,,,,,"하고 세더니 2천원을 주면서 저녁 사먹으라고 100원을 더 얹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두 번만 더 넣으면 된다“고 마치 큰 결심이라도 선 듯 혼자 중얼거리는 말, 내가 과연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인가?”

 

당시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였고 울릉도로 들어가는 내게 여비를 주셨던가 보다. 분명히 부모님께서는 울릉도에 계실 때인데 서울에 잠깐 다니러 오셨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머니로부터 여비와 저녁 값을 받았다. 어머님은 아들 앞에서 돈을 아껴 쓰라는 의미로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우정 한 장 한 장을 세셨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두 번만 더 넣으면 된다”는 말씀은 대학 마지막 등록금 4학년 두 번만 넣으면 내 임무는 끝나는 것이니 열심히 해라는 뜻이었다. 당시 어머니의 깊은 뜻은 알 수가 없었으나 나 또한 이 의미는 알아챈 것 같다. 그래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라고 적어 두질 않았겠는가?

 

난 어머니가 연령대 별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평소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말년에 늙고 힘든 모습만 내게 다가올 뿐 내 나이가 어머니의 나이에 가까워지니 모든 게 송구스럽기만 하다.

가만히 계산해보니 이때의 어머니 나이가 쉰여섯이었다. 큰 돈벌이도 못하시면서 막내아들 대학을 마치게 하려는 뜨거운 모정에 눈물이 글썽 그려진다.

 

좀 더 따뜻하게 잘 해드리지 못하고 뻔질나게 해외를 다니던 나였건만  해외여행 한 번도 못시켜드린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일기장에 ‘십 원’이 불쑥 나온 탓에 아침부터 눈물이 나온다.

 

막걸 리가 어디 있더라,,,,

 

 

@2022년1월18일

 

 

▲ 나의 어머니 '김 이조'
▲ 울릉도 어느 바닷가에 모여서  즐기고 있는 아낙네들. 내 어머니도 친구 '김정숙' 어머니 뒤에 보인다. 왼쪽 위에는 친구  '정준열'  어머니도 보이고 '정연자' 어머니 같기도 하고, '홍현표' 어머니도 뒤쪽 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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