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리’
어릴 적 우린 그것을 ‘나부리’라고 불렀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면 하얀 포말이 겹겹이 이어지면서 뭍으로 내쳐지곤 했다. 파도이면서 너울을 울릉도 아이들은 이렇게 불렀다. 내 고향에서의 하얀 파도가 생각이 났다. ‘나부리’라고 불렀던 원래 의미가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세찬 파도라도 좋고 '북저바위'에 부딪쳐 이는 잔잔한 파도이어도 난 개의치 않는다. 아무려면 어떠랴. 오늘은 ‘나부리’가 센 날이 틀림없다.
연이은 추위로 팔당호가 얼어붙었고 눈까지 살포시 덥혀있었는데 오늘은 강한 바람으로 흰 눈이 물결무늬처럼 편대를 이루어 음양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어쩌면 이 시간 난 고향 ‘울릉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팔당호가 마치 바다같이 넓고 시원할 뿐 아니라 오늘처럼 하얗게 뒤집어지는 파도의 너울이 너무 익숙해서이다. 그야말로 팔당 호수에서 고향의 그 힘차고 용맹스러운 ‘나부리’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다.
‘나부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절로 나온 옛 말이었다. 실로 수 십 년 만에 중얼대면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다. 그러고 보니 또 다른 파도가 생각났다. ‘시게’라는 말이다. 그때의 우린 “시게 났다”라고 했다. 시게가 났으니 이까(오징어의 일본말) 잡이는 틀렸다고 했다. 물론 ‘시게’는 일본말 ‘時化(시케)로서 바람에 의해 거칠어진 파도를 말한다. 정말이지 그땐 일본말이 일상어로 된 것이 너무나 많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일까 더욱 실감이 간다. 경기도 팔당호수에 오늘 정말 “시게 났다”
@2022년1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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