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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노인의 하루

by 빠피홍 2021. 12. 4.

 

 

노인의 하루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는 요 며칠 사이 내가 이렇게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것도 아마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 있는 나무와 야생화들의 월동준비는 대충 끝났고 땅은 이미 얼어 딱딱하기 그지없다. 삽과 괭이 등 각종 연장도 비를 맞지 않도록 창고에 넣어 바깥일은 거의 마무리된 셈이다.

 

집사람이 일을 나가느라 거의 매일 나 혼자가 된 것이 수 년 째다. 젊었을 때는 싫어하더니 나이가 들어 일을 하다 보니 재미가 있다고 한다. 내가 힘들 때 생계를 책임진다고 나간 것이 이제 일상화가 된 것이다. 게다가 투 잡을 뛰고 있으니 몸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내년부터는 그만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해도 일 이 년만 더 하겠다고 한다.

 

쓰레기 치우는 것과 설거지의 반은 내 몫이다. 설거지는 정말 귀찮은 일이다. 어느 날 저녁을 챙겨먹고 설거지가 귀찮아 그냥 내버려두었는데 늦게 들어온 집사람이 왜 설거지를 안 했는지 물어와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힘들게 돈벌이를 하고 왔는데 집에서 놀고먹는 남편이란 자는 설거지도 안하고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뜻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데 늘 신경이 쓰여 매우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내딛는다. 자칫 방심하면 삐꺽하여 낙상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몇 차례 넘어질 뻔 한 경험이 있던 터라 잠이 덜 깬 아침에는 더 더욱 조심한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간씩 걷는데도 걸음걸이가 똑바로 나아가지 않고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는 것 또한 짜증이 난다.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마셔대던 막걸리를 20일째 금주를 한 탓일까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무기력감이다. 코로나 백신 부스터샷을 맞고 사위가 보내준 역류성식도염 약 ‘Mastic Gum’을 먹느라 실로 오랫동안 작심하고 금주를 하고 있다. 한시적이지만 힘들 것 같던 금주도 그럭저럭 이겨내면서 허구한 날 볼그스름한 얼굴과 입에서 풍기는 막걸리 냄새가 없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나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을 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술 약속도 미루었다.

 

막걸리를 마시지 않아서인지 밥과 간식이 배로 늘었다. 과자 한 봉지를 뜯으면 몇 시간 내에 바닥이 나고 만다. 겨울이 된 요즘의 일과는 아무래도 무언가 텅 빈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에는 거의 한 시간씩 울릉도 소식을 전하는 기사 탐색과 편집을 하여 ‘울사모’카페에 소개하고 이틀에 한 번씩 내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 네이버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오늘의 영어회화’를 한 시간 정도 몰입한다. 그리고 7천보를 목표로 걷기를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신문을 보고 유튜브를 통해 시사평론을 듣고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 요 며칠 서부영화를 열편이나 본 것 같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도 싫어 정치관련 기사는 가급적 기피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즐겨 보던 각종 시사평론도 대부분 차단해버리고 몇 개 채널만 보고 있다. 11시 김광일쇼, 최영묵의 팩트, 조갑제TV, 김영호교수의 세상읽기, 신인균의 국방TV, 추부길의 와이타임즈, 정광용 레지스탕스 정도만 접할 뿐이다.

 

팔당호 호수에 철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쪽으로 넘어가는 석양이 호수에 반영되어 아름답다.

 

 

@2021년12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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