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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

by 빠피홍 2021. 10. 2.

부모님의 산소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

 

 

내 나이가 벌써 일흔일곱이다.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빨리 흘러왔는지 놀랍긴 하지만 이제 무언가를 준비해야할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오늘은 용인에 있는 처인구청 사회복지과에 다녀왔다.

면사무소에서 고인의 제적등본을 발급 받아 제출해야 하는데 어머님의 제적은 알 수가 없다고 하여 가족관계증면원으로 대체 발급 받아 무사히 개장(開葬)허가를 받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의 묘를 개장하여 화장을 하려면 개장허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이었다.

 

위로 형님 세분은 벌써 돌아가시고 생존자는 팔순이 넘은 누님과 내가 유일하다.

아버님은 37년 전에, 어머님은 27년 전에 돌아가셨다. 지금 용인공원묘지에 편히 쉬고 계신다. 자주 가 뵙지는 못하지만 지난 번 갔을 때만 해도 우거진 숲과 산꼭대기여서 찾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숨이 차서 무척 힘이 들었다.

 

누님과 상의를 하여 파묘하고 화장하기로 했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딱히 관리할 사람도 없거니와 묘를 그대로 둔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들 둘은 모두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음으로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묘에 대해 관심이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종손이 있긴 하나 여태 한 번도 산소를 찾아온 적이 없는 그런 류의 조카이다. 세상이 이렇게 황금만능주의로 바뀌다 보니 본인에게 이득이 없으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니 종손과 상의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관리비 또한 문제다. 일 년에 80만원씩 오년 치 4백만원을 선납해야한다고 한다.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엇 때문에 당시에 화장장을 하지 않고 굳이 산소를 써야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난 후손들에게 이런저런 부담을 주지 않고 오로지 그들의 기억 속에만 내가 존재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용인공원으로 가서 개장절차와 화장일자 등을 논의한 후에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화장일자를 확정했다. 제반 비용도 미리 송금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개장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새삼 세상의 허무함을 느낀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마지막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착잡한 상념이 스쳐지나간다.

 

 

@2021년9월30일

 

개장과 관련한 서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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