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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첫 눈

by 빠피홍 2021. 11. 11.

 

 

 

첫 눈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있다. 올해 들어 첫눈인 셈이다. 한 시간 남짓 가늘게 내리더니 이내 그쳤다. 거실에서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다 갑자기 지나온 세월이 떠오르면서 ‘가정(假定)’이란 단어가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내 삶에 있어 가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 그 때 좀 더 과감하게 밀어붙일걸.” “좀 더 일찍 방향을 바꿀걸 그랬어.” 등 실패를 정당화하며 후회가 엄습할 때 튀어나오는 것 같다. 요즈음에 와서 이 가정이 자주 내 입에서 맴돌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뚜렷한 목표도 없이 그냥 살아온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돈을 벌기위해 이런저런 일을 했을 뿐 80이 내일 모레인 지금도 무언가 아쉽고 허전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결국, 지나온 일들이 후회스러운 것이 아닌가?

 

정원에는 잠깐 내렸던 눈이 멈추고 떨어진 낙엽이 마구 뒹군다. 바람도 꽤 많이 분다. 엊그제 이틀간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청소반장으로부터 전화다. 삼겹살 구워놓았으니 마을회관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집에 있는 국산 증류주 한 병을 들고 건너갔다.

 

집에 돌아와 하늘을 보니 벌써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구름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TV조선에서 매주 목요일에 방영하는 ‘국민가수’에서 멋지게 노래를 부르던 일곱 살 ‘김 유하’의 “아 옛날이여”와 “잊었니”가 난 그렇게 좋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었을 때 ‘김 유하’는 끝까지 자기 꿈을 향해 계속 밀어붙이고 있을까 아니면 궤도를 수정할까 갑자기 꼬마 노래꾼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뉴욕에 있는 손자에게 무슨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그냥 너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 소질을 찾아내어 조기교육을 시키도록 할 것인가? 인생에 있어 가정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도 아직도 내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서쪽으로 지는 해가 마지막 강열한 빛을 쪼이고 있다.

 

 

@2021년11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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