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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힘들고 기쁜 날

by 빠피홍 2021. 5. 10.

 

마을 입구에 귀여3리로부터 기증받은 코스모스를 마을사람들이 심고있다.

 

 

힘들고 기쁜 날

 

 

아침부터 비가 세차게 뿌린다. 점점 더 심해질 것 같다. 위에 사시는 큰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쌈지공원에 심을 꽃 보러 가는데 시간이 괜찮으면 같이 가자는 연락이었다. 하남에 있는 꽃시장에 도착하여 첫 번째 집인 ‘명광농원’에 가서 큰어르신이 세 종류의 꽃을 정했다.

 

‘로벨리아’ ‘비덴스’ 그리고 ‘춘절국’이었다. 주인 여사장의 설명으로는 모두 노지월동이 된다고 하여 즉석에서 구입했다. 물론 큰어르신의 개인 돈으로 사는 것이다. 한 종류 당 열 판씩이다. 구입한 꽃 숫자가 육백 개다. 사전에 이 많은 꽃을 심을 사람도 정해진 바가 없다. 이 어른에게는 구상이 정해졌겠지만 100만원에 서른 판을 구입하고 동네 어귀에서 꽃들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다.

 

이 어르신이 동네로 들어오는 도중에 귀여3리 이장과 통화를 하더니만 코스코스 스무 판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돈을 준다고 해도 마을공원용이니 무상으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 광주시에서 심어둔 천일홍, 메리골드 그리고 백일홍을 심어둔 곳에 이장이 코스모스를 싣고 왔다. 곧 이어 도착한 서른 판의 꽃들을 어떻게 심을 것인가? 내일까지 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장이 소형 트랙트로 코스모스 심을 자리에 흙 갈이를 한다. 그리고 명광농원에서 구입한 세 종류를 심을 곳도 소형 경운기로타리를 끌고 와서 흙을 뒤집어 놓고 퇴비와 유박을 적당히 섞은 다음 위치를 정했다. 마치 치밀한 설계로 꽃 숫자와 심을 장소를 정한 듯이 흙 갈이도 끝냈다.

 

심을 사람은 어떻게 구하지? 이 어르신이 여기저기 전화로 동네 사람들을 불러내어 삽시간에 8~9명이 달라붙어 저녁 해가 지기 전에 모두 꽃 심기가 끝났다. 이 작업은 이 어르신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동네의 관문이어서 아무리 예쁘게 하겠다고 한들 별로 관심들이 없다. 몇몇 주민들에게는 오로지 성가실 뿐이다. 남들이 다 해놓고 나면 좋아하겠지만 막상 나와서 일을 도우라고 하면 짜증나는 것 이게 시골 인심이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이 기적 같은 일이 하루 만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이 어르신은 시골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음으로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돈으로 꽃들을 사고 귀여3리 이장으로부터 코스모스를 기증받고 본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심을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은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오로지 큰어르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힘든 하루였지만 정말 기쁜 날이다. 마을이 맑아진 느낌이다. 큰 어르신의 진두지휘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자기 일처럼 달려들어 해결해주는 해결사 역할도 서슴지 않는다. 난 이 분의 비서처럼 같이 동행하며 공동목표를 위해 조그만 힘이나마 돕고 있는 것이다.

 

 

@2021년5월7일

 

앞에서부터 천일홍, 메리골드, 백일홍이고 멀리 뒤쪽에 코스모스를 심었다
▲오른쪽 공원 입구
▲ 왼쪽 공원 쪽에 심어둔 각종 꽃
▲ 도착한 꽃들이 가득하다

▲ 비벤스
▲ 로벨리아
▲ 춘절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