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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금수저

by 빠피홍 2015. 12. 31.





금수저

 

서울 소재 과학고를 졸업한 서울대 재학생이 자살을 예고한 뒤 건물에서 투신해 숨졌다.

18일 서울 관악경찰서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서울대 2학년생 A(19)씨가 이날 오전 358분쯤 자신이 거주하는 관악구 신림동의 4층짜리 상가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A씨는 투신하기 20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과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 유서를 퍼뜨려 달라며 글을 올렸다.

그는 글에서 정신적 귀족이 되고 싶었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금전두엽이 아닌 금수저(부를 물려 받은 자녀)’” 등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았다.(한국일보, 2015-12-18)

 

과학고를 졸업한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학생이 또 하나의 주검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것도 사고사가 아닌 자살로. 알아듣기도 힘든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금수저다라는 말을 여러 사람들에게 퍼뜨려 달라면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의 부모가 금력이나 권력이 없으면 애써 노력해도 삶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꿈같은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뜻이 아닌가?

 

젊었을 때야 무슨 생각을 못하겠는가? 그 스스로는 이 땅에서 선택되었는데 막상 대한민국 초일류학생들이 모인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착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학생들이 주위에 많았을 것이다. 요즘은 부잣집 애들이 좋은 학교에 많이 들어가는 것도 현실이니까.

 

가진 자나 없는 자도 삶 모두가 엇비슷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의 세상은 확연히 구분되어 있고 그 차이는 엄청나다. 그 때와는 달리 빈부차이가 뚜렷하며 가진 자들의 행태는 화려하고 현란하다. 서울의 강남에 가 보라. 보통의 젊은이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상들을 매일 어느 곳이든 볼 수 있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외제고급차를 몰고 잘 생기고 예쁜 남녀가 어울려 고급식당을 들락거리며 돈을 팡팡 쓰고 다닌다.

 

캠퍼스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뇌리에는 무언가 억울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도저히 따라붙을 수 없는 현상들이 저편에 가득했을 것이다. 자만심이 강했던 청년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포효했을지도 모른다. 난 도대체 뭣인가 서울대생이면 개뿔 무엇이란 말인가 금수저라도 물고 태어났다면 나도 저런 류에 낄 수 있을 터인데 라고 말이다. 얼핏 부모를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애써 바둥거려 보아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짓눌렀을 것이다. 결국 인생은 출발선상에서 이미 갈라진다는 것에 그는 몹시 당황하고 갈등했을지 모른다.

 

아로 자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교직자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데 이 정도면 은수저급은 되지 않았겠는가? 그의 눈에는 미래의 자기완성을 위해 참고 인내하고 있는 많은 흙수저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서울대생쯤 되면 금수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어느 누구보다 보장된 것이나 다름 없음에도 꼭 자기가 금수저를 받아야만 되고 스스로 금수저를 만들면 아니 되는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면서도 금수저를 만들어 낸 많은 선배들을 보지도 못했던 것인가? 언제 그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가? 참고 견디며 몸부림친 결과로 이룬 결과가 아니겠는가? 고인이 된 그에게 안타까운 심정으로 되묻고 싶다.

 

96세가 된 철학교수였던 김형석은 말한다

“65세에서 75세까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많은 학생들이 읽었던 영원과 사랑의 대화나 이어령 교수의 흙속에 저 바람 속에라는 수필집이 생각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런 책이라도 읽으면서 가장 행복했다는 그 칠십대를 향해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준비를 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많은 것이 결정되어 나온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자. 그리고 생존은 결코 수저 색깔로 구분되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자.

 

@201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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