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꼬막
인터넷으로 주문한 꼬막이 도착했다. 그동안 내 마음을 짓눌렀던 꼬막을 오늘 전해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상쾌한 날이다. 실로 일 년 만에 꼬막을 들고 위에 살고 있는 한 장로 댁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리자 딸이 나와서 맞이한다. 한 장로에게 전해드리라고 택배물 박스를 건네주고 내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현관입구에 팽개쳐놓고 오고싶었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면서 전한 것이었다.
지난 해 1월16일이었다. 겨울이면 뒷산을 오르는 것이 일상이어서 올라가는 길에 길가에 있는 한 장로 집 현관 앞에 스티로폼 박스가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대문은 활짝 열린 채였다. 한 장로 내외가 매년 12월이면 미국의 자녀 집으로 가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지라 난 순간적으로 이걸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안으로 들어가서 박스에 적힌 곳으로 전화를 했다.
벌교에 있는 한 장로 지인이 보낸 것으로 내용물은 꼬막이었다. 한 장로가 미국에 갔는데 누가 가져갈 수도 있고 상할 수도 있으니 제가 도로 부쳐드릴까요 했더니 내가 누구인지 묻고는 혹시 그 부인이 한국에 있을지도 모르니 한 번 알아봐주시고 연락이 안 되면 나보고 갖다 드시라고 했다.
꼬막을 들고 내려와 지인에게 연락을 하자 그 딸이 간혹 집에 온다고 하여 전화번호를 받아 연락을 했으나 소식이 없어 자칫 상할 우려가 있어 내가 처분을 하고 미국에서 돌아오면 그 때 내가 사주던가 아니면 덕분에 잘 먹었노라고 하며 다른 무언가를 건넬 생각이었다. 이튿날 윗동네 종씨네와 반 갈라서 먹고 이후 매일 산행을 하면서 돌아왔는지 궁금해 하면서 만날 날을 고대했었다.
그리고 마을회관에서 우연히 한 장로를 만나 반가워서 말을 붙이려는 순간 후다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난 뒤따라가면서 한 장로를 불렀으나 그는 총알같이 내 빼버렸다. 이제 돌아온 것을 확인했으니 내일이라도 연락을 하여 만나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할 생각이었는데 부녀회장이 내게 한 장로 집에 온 택배물을 가져갔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무언가가 있어서 한 장로가 후다닥 나가버린 것이었다.
한 장로가 주민이 모여 있는 회관에서 내가 남의 집에 있는 택배를 들고 갔다고 고변을 한 것이었다. 즉 내가 남의 집 물건을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부녀회장의 말로는 남의 집에 택배가 왔으면 그대로 둘 것이지 왜 가져갔느냐는 것이었다. 부녀회장에게 그간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을 했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교회의 원로 장로인 사람이 나와 모르는 처지도 아닌데 한국에 왔으면 내게 전화라도 한 번 넣어서 “내 꼬막 맛이 괜찮았어요?” 라고 물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분이 아니었던가?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입이 간지러워 참지를 못한 것이었다. 졸지에 도둑으로 몰린 난 집에 돌아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로 올라가 불렀으나 반응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내려와 새벽까지 긴 편지를 썼다.
나이도 나와 비슷한 연배이고 교회의 장로인 사람이 나와 사이도 나쁜 관계도 아닌데 내가 남의 집 물건이나 훔쳐가는 사람으로 보였으며 이를 동네의 아주머니들에게 일러바쳤으니 난 며칠 후에 그간의 경위를 설명한 긴 편지를 전하면서 그와 심한 언쟁을 했었다. 좁쌀 같은 영감이 아니던가? 교회의 장로나 되는 사람이 이렇게 옹졸한지 난 정말 놀랐었다.
오늘 드디어 꼬막을 돌려주었다. 그동안 몇 차례나 같은 벌교꼬막을 전해주려고 연락을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채취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1월이나 2월에 맛이 드는 꼬막이라고 주위사람들이 일러주어서 또 연락을 했더니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오늘 돌려주었다.
시골의 생활이란 매사 못 본채 해야하나보다.
@2021년2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