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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울릉도의 ‘깍개등’

by 빠피홍 2021. 2. 17.

 

 

 

울릉도의 ‘깍개등’

 

 

설 연휴 사흘간 KBS 1TV에서 “울릉도에 산다”는 3부작 설 특집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TV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간혹 울릉도를 소개하는 특집 방송이 TV에 나오곤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방콕 신세가 된 터라 고향스토리가 나온다는 소식에 설렘과 한 컷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본다.

 

내 고향 울릉도에 ‘깍개등’이라는 같은 이름이 네 곳이라는 것도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깎아지른 산등성이의 오지를 ‘깍개등’이라고 한단다. 해설자의 말로는 이곳은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험한 곳이라 했다. ‘구암깍개등’ ‘저동깍개등’ ‘천부깍개등’ ‘도동깍개등’ 등이다.

 

유년기에 살았던 우리들은 ‘깍개등’을 ‘깍개터’ ‘깍기터’ 또는 ‘까깨뜨’ 등으로 불렀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였으니 친구들 마다 발음을 달리 해도 그것으로 통했지 동네 이름을 글로 써본 적이 없으니 우린, 어른들이 부르는 대로 따라 부르면 되었기에 새삼스럽게 ‘깍개등’이라는 공식 이름을 대하니 약간은 어색하다.

 

1편은 오지인 산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겨울 생활을 조명한 것으로 ‘구암 깍개등’과 ‘저동 깍개등’에서 눈보라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구암’은 원주민인 김명복씨 내외, ‘저동’은 나이든 이주민인 김등환씨 내외가 섬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깍개등’? 내게는 매우 친숙한 곳이다. 내가 알고 있는 ‘깍개등’은 도동과 저동에 있는 곳뿐인데 ‘구암’ 과 ‘천부’에도 ‘깍개등’이 있다고 한다.

 

도동에 있는 ‘깍개등’에는 초등학교 친구인 임광호와 일찍 세상을 떠난 이진호 둘이 살고 있어서 간혹 놀러가곤 했으나 지금은 모두 살고 있지 않고 한 때는 땅이 갈라져서 위험한 곳으로도 소문난 곳이다.

 

내게는 성년이 되어서 몇 년간 스키를 자주 타던 곳이기도 하다. 스키가 서툰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아 소나무 가지를 잘라 모아둔 덤불로 직행하여 찔려 죽을 뻔한 곳이다. 그리고 ‘깍개등’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안평전’ 가는 길에 위치해 있어 내가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 피난을 갔던 ‘안평전’과 늘 같은 동의어로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가 군수로 재임하고 있을 때인데 곧 인민군이 울릉도에 까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떠돌아 어머니와 단 둘이 ‘깍개등’을 거쳐 ‘안평전’으로 피난을 간 것이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던 바람 한 점 없던 적막한 밤, 엄마 등에 업힌 채 ‘깍개등’을 거쳐 안평전으로 향하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피난 가는 것을 어른들은 ‘소까이’간다고 했는데 바로 피난 가던 길목이 도동 ‘깍개등’이어서 더 정감이 간다.

 

저동에 있는 ‘깍개등’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배석범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와 함께 딱 한번 간적이 있었다. 지금의 울릉고등학교 뒤쪽으로 가다보면 네모 난 콘크리트 홀에 물이 가득담긴 작은 저수지가 있었고 논두렁 같은 곳을 지나 언덕으로 올라간 것 같다. 이 또한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는데 어머니를 따라 어느 초가집으로 가서 감자떡과 고구마, 삶은 옥수수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당시에는 군청에 소사가 있었는데 이 소사의 원래 집이 ‘깍개등‘이었던 같다. 지금도 저동의 ’깍개등‘하면 늘 그 때의 감자떡과 강냉이 생각이 떠오른다.

 

2편은 도동과 천부의 ‘깍개등‘ 이야기를 원주민과 이주민의 각기 다른 시각에서 조명을 했다. ’도동깍개등‘에 터를 잡고 있는 원주민인 박중환씨는 몸이 아파 집을 떠난 지 일 년 만에 돌아왔다는데 임광호와 무척 닮아서 깜작 놀랐다. 도동 아랫마을로 내려왔다는 광호가 다시 ’깍개등‘으로 올라간 줄 착각할 정도였다.

“살찐아! 밥 묵자!” 하는 소리에 난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실로 오랜만에 듣는 ’살찐아‘는 고양이를 부를 때 부르던 울릉도 말이었다.

 

‘천부깍개등’은 ‘본천부’로 올라가는 언덕배기 같아 보이는데 이주민인 정헌종씨가 집을 짓고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각자 나름대로 많은 사연을 안은 채 깎아지른 산등성이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내 생각에는 예전과 달리 지금의 울릉도는 오지랄 것도 없을 듯하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낼 뿐 웬만하면 트럭도 소유하고 군에서 도로포장도 해주고 전기도 넣어주는 등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들었다. 어쨌건 눈이 하얗게 쌓인 내 고향의 산천을 평지에서가 아닌 드론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옛 생각에 감회가 새롭다.

 

우산 고로쇠를 채취하는 모습, 대나무 스키를 타는 아동들의 모습, 조기라고 불렀던 한치 낚시, 바위에서 돌김을 캐고 이를 말리는 작업과 마른 김을 홍두깨 같은 롤러로 미는 모습이 정겹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울릉도가 내 고향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순간 든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말이 달라서 일까 무언가 고향을 뺏긴 기분이다. 고향이 이렇게 바뀌고 있음에도 억양과 생각이 다른 이주민들에게서 아직도 난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고향은 내 오랜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을 뿐 나 스스로 점차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음에 스스로 놀란다.

 

 

@2021년2월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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