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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이장(里長)하기로 결심하다

by 빠피홍 2020. 12. 2.

 

 

2020년11월18일 자로 발급된 정보공개 공문

 

 

이장(里長)하기로 결심하다

 

 

정보공개 서류에는 주민회의 개최도 않았는데 참석자의 서명이 있으니 이것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그 이유를 물어야 했다. 당연히 알아야하니까. 이장에게 연락을 하자 김장 때문에 며칠 간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하며 내일 오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오전보다는 저녁에 막걸리라도 한잔 곁들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마을 회관에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사업내용이 담긴 서명명부도 가져오라고 부탁했는데 그냥 나왔다.

 

난, 다짜고짜로 정보공개 서류를 보여주면서 이 참석자명단은 언제 서명한 것이냐고 물었다. 지난 번 11월16일 우리 집을 찾아와서 싸인 해달라고 들고 왔던 그 서류라고 한다. 즉, 싸인 받은 서류를 당일에 면사무소에 제출했다는 의미였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장은 며칠 전부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 것 같아 표정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이번을 기화로 해서 이제는 정신 차려서 제대로 할 것인가? 난 절로 고개가 흔들렸다. 아니야, 또 지나고 나면 그만 일거야.

 

근본적으로 제대로 하려면 내가 이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야. 나이도 그렇고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이장이야. 아니야. 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저지르는 저들을 어떻게 하지? 도대체 가치관도 생각도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저들을 어떻게 하지? 난 지난 4년간 임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몸이었다. 그냥 예전대로 내버려두지 웬 간섭이야. 지가 이 동네에 언제부터 왔다고. 늙은이가 너무 까탈스러워 지랄이야. 마치 내 귀에 들려오는 듯 한 이런 소리를 잘 알고 있음에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내가 주장한대로 어느새 바뀌어져 있었다.

 

그새 며칠 간 많은 갈등을 했다. 이 대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너편에 있는 김 교수로부터도 오래 전부터 몇 차례나 내게 이장을 맡아 마을을 바로잡아달라고 요청을 받은 바 있으나 될 수도 없거니와 동네 일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어서 거절을 했다. 시골 농사일도 잘 모르고 나이도 있고 날 지지할 사람도 없고 해서 정중히 거절한 것이었다.

 

정보공개의 서명 건을 확인한 다음에 난 바로 이장에게 물었다. 다음 달에 이장선출이 있는데 이번에도 이장을 할 것인가를. 그는 꼭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생업에 바쁜데 할 사람이 없다고 하니 내가 하게 된 것이지 특별히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라는 식의 답변이었다. 그래서 내가 단도직입으로 그럼 이번에 내가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내가 나이도 많고 농사에 관한 것은 아는 것이 별로 없으나 행정적인 것이라든지 대관업무 등은 이장보다 더 경험이 많고 하니 딱 2년간 내게 맡겨서 당신도 내게서 배우고 같이 기본 틀을 만들어서 우리 면에서 제일 으뜸가는 동네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

“아이쿠! 이렇게 직접 말씀해주시니 좋으네요. 그렇게 하시지요.”

“좋습니다. 그래도 이장께서 주위의 지인들과 상의를 해보세요. 우리가 이야기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니... 나도 회장님께 이장과 나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1월19일 저녁, 회장님으로 불리는 큰어르신 댁을 방문하여 이장과 나누었던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내가 이장을 했으면 한다고 말씀 드렸다. 내가 평소 존경하고 마을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는 스타일의 인물인지라 마을의 대소사는 이 큰어르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되는 것이 없을 정도의 파워를 갖고 계시는 분이어서 반드시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의외로 굉장히 신중한 의견을 내주셨다. 요점은 이러했다.

 

“당신의 나이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원칙주의자여서 마을 주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경상도 출신이어서 과도한 언행으로 분란을 야기 할 수 있고 남종면의 이장이 14명이나 되는데 원주민인 그들과 조화가 잘 될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마을 일이래야 별 것 아닌데 사업계획을 보면 다 필요한 것이더라. 이장과 미리 상의를 했다고 하니 내 한번 이장을 불러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라는 취지로 가급적이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큰어르신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모두 맞는 말이다. 나를 아끼는 마음이 묻어나는 자문이었다. 혹여 잘못하여 망신당할 수도 있고 하니 신중히 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였다.

 

이장으로부터 며칠 내로 연락해올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달 말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한 번 만나서 의견을 물어 봐야겠다. 주변의 지인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를 알려 달라. 그래야 내가 다음 행보를 가져갈게 아닌가 하고 확인을 해야겠다.

 

 

@2020년11월19일(목요일)

 

* 이 글을 올리는 오늘 12월2일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오늘 중으로 물어봐야겠다.

11월16일에 서명한 17명의 주민회의참석자 명단을 10월10일에 서명한 것 처럼 끼어넣은 서명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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