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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기막힌 정보공개 자료

by 빠피홍 2020. 11. 29.

 

마을 입구에서 바라 본 팔당호

 

기막힌 정보공개 자료

 

 

11월16일 이장으로부터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사업계획과 주민의 싸인이 들어있는 서류를 가지고 와서 읽어보고 싸인을 해달라고 한다. 이번 건은 정말 잘못했으니 사과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다. 일주일 전에는 마치 자기의 행위가 정당한 것처럼 그렇게 당당하더니만 이제는 사과한다고 했다. 난, 사업내용은 면사무소에 요청해 놓은 자료를 보면 되고 싸인은 내가 안한다고 처리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거절했다. 어떻든 이번 기회에 정관과 법을 위반하고 주민을 무시하는 이런 처사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그렇게 정당하고 당당하다면 그대로 밀고나가던지 한 달이 넘은 지금에 와서야 왜 사과를 하고 때 늦은 절차를 밟는지 난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민들의 동의절차도 간단할 뿐 아니라 사업내용 또한 자기 들 뜻대로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이것이 귀찮고 하찮은 일로 간주하며 이장과 그들의 머릿속에는 자기들이 하면 모두 합법이라는 인식이 배어있다. 수년에 걸쳐 일관되게 계속해서 주민지원 사업은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한다고 입이 아프도록 열변을 토하고 투쟁도 했건만 이번에도 처절하게 이런 과정을 뭉개버렸다.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내일이 열흘째인데 아직도 정보공개 자료가 안 되었느냐고 하자 담당 여성주무관이 상냥하게 설명을 하면서 쉬는 날도 빼고 보니 이렇게 되었고 오늘 결재를 올려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면서 아마 내일쯤 오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작은 동네에서 서류 몇 장 복사하여 윗사람에게 결재 받는 것이 무슨 열흘이나 걸릴 일도 아닌데 일자를 꽉 채워서 쉬는 날 빼고 열흘이라니 난 같이 웃어주었다. “예,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1400원 수수료를 납부한 후 내일 오라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11월19일 아침 일찍 면사무소를 찾아가서 준비된 자료를 간단히 펼쳐보고 집으로 와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마을공동 비료구입비 1,770만원 외 8개 항목 모두 43,308,000원으로 작년보다 증액된 금액이었다. 그리고 ‘주민지원사업 주민회의 회의록’ ‘주민지원사업 주민(임원)회의 회의록’ ‘주민회의 참석자 명단’ 등이 첨부되어있었다.

 

난 서류를 보는 순간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관에서 하는 일인데 꼼수를 쓰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이건 정말 아마추어들도 하지 않을 일들이다. 의문점을 짚어보았다.

 

첫째, 당초 이장이 면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한 날짜를 10월13일 기준으로 보았다. 회의록에 기록된 주민회의 회의일시가 10월13일(화)로 되어있었다. 나를 포함한 마을주민 그 누구도 어떤 회의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회의록을 관에 제출할 수 있지?

 

둘째, 임원회의록은 제출할 서류가 아닌데도 왜 굳이 제출하지? 궁금해 하면서 임원회의록을 보니 회의록에“ 정관 제8조에 의거 임원회의 의결사항은 마을회의에 회부하여 의결을 득하여야 하나 코로나19 전염병 예방에 따른 모든 모임 중지권고로 우선 임원 의결로 면사무소에 신청하고 향후 공지하여 의결키로 함.” 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주민회의를 열지 않고 임원들만의 회의로 의결된 것이 확실한데 왜 주민회의록과 서명부가 첨부되어있지?

 

셋째, 주민회의 참석자 명단 17명의 서명은 언제 받은 것이지? 예전에 다른 건으로 받은 것을 복사하여 제출했나? 아니면 지난 16일에 이장이 싸인해 달라고 내게 가져왔던 그 싸인을 첨부했나?

 

궁금증이 계속되어 이런저런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면 담당자가 이장에게 연락을 취해 당신네 동네에 사는 홍 아무개라는 사람이 와서 사업내용을 알고 싶다고 하니 주민회의를 안 한 것이 분명하니 서둘러 서류를 보완해 오시오. 그래서 그 열흘 사이에 이장이 마을주민들에게 찾아가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은 후 마지막에 내게 온 것이었구나. 그렇다면 이 친구 정말 괘씸하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나고 보완을 하려했다면 즉시 내게 먼저 와서 사과를 하고 이번 일은 없는 걸로 해달라고 용서를 구해야지 일주일이나 지나 마지막에 내게 와서 사과하는 척하고 싸인을 해달라고? 이 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있어. 이 사람아! 뭐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면사무소 직원들도 참 한심한 행위를 했다고 본다. 내가 정보공개를 요청한 것은 10월13일 날자에 제출된 서류인데 그날까지 제출되었던 서류만 복사해주면 될 걸  한 달이 경과한 11월16일 이장이 들고 간 참석자들의 서명을 넣어 해당 일에 접수한 서류인양 끼어 넣기를 한 것이다. 나를 바보로 알고 한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 또한 관과 다투어 보았자 우리 마을에 좋을 리도 없을 것이니 서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해보자는 의도일 것이고 내가 충분히 이해해주리라는 암묵적 기대를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아. 내가 물고 늘어지면 어쩜 배임죄도 될 수 있어. 공무원들 징계는 기본이야! 그냥 기본대로 하면 되었을 것을 약간 씁쓸했다.

 

 

@2020년11월18일(수요일)

 

▲▼2018년 11월에 면사무소에서 받은 주민지원사업 관련 조례
▲2020년11월18일 내게 전해준 귀여2리 마을 정보공개 공문 첫페이지
▲당일 참석했다는 참석자명부다. 물론 한달이 지난 후에 만든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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