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소가(小家)에 오다
모두들 아니 대부분 친구들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소수가 단독주택에 살고 그 중에 극소수가 전원생활의 단독주택에 산다. 내가 바로 극소수인 시골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해가 넘어가기 전 만추(晩秋)에 친구들이 찾아온단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이 들어 이웃나들이도하기 귀찮아하는 나이인데 이곳 먼 곳까지 온다는 것은 여간 큰마음 먹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엔간하면 서울나들이를 잘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내게 폐 끼치기 싫다고 퇴촌 어디에선가 점심을 먹고 온다더니 집과 가까운 분원리에서 나도 같이 점심을 먹고 집에 가자고 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을.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다. 분원리는 별다른 식당이 없고 매운탕 전문점이 많은데 일단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준비한 간단한 안주로 술 한 잔 하면서 나중에 매운탕을 시키는 게 어떠냐고 말이다.
민물 매운탕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는데 괜찮겠느냐고 하자 잡고기에 새우 많이 넣으면 좋겠다고 했다. 5분 거리인 식당 강변집에서 매운탕을 가지고 왔다. 원형 플라스틱통에 매운탕, 밥 그리고 야채, 수제비, 밥반찬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난 그릇 반환을 걱정했었는데 그릇을 반환하는 따위의 번거로움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참 편리하다. 그저 달랑 들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고기들이 너무 익어서 별로인 것 같다. 재료만 들고 집에 와서 끓이는 것이 훨씬 나을 뻔 했다.
집사람이 아침에 준비해 놓은 닭다리와 날개를 간장에 절인 안주로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4개월 만에 다시 모여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흐리다는 예보와는 달리 너무 좋은 날씨에 모두들 약주에 취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성천이, 순복이, 진호,호섭이, 병철이가 한 차에 왔다. 춘부도 온다더니 감기에 들어 누었단다.
아쉽게도 이틀 전까지만 해도 예쁘게 피어있던 해국과 뻐꾹나리가 서리가 내려 모두들 풀이 죽어 늦가을의 꽃구경은 실망이었으나 그래도 빨강구절초와 노랑 털머위가 친구들을 반겨주었다. 커피도 한잔했다. 그 멋진 커피 잔들도 오랜 세월에 굴러다니다가 대부분 깨져 버리고 이제 몇 개 남은 잔이지만 비록 모양이 각기 달라도 예쁜 잔에 마셔야지 예까지 와서 종이컵에 후루룩 마실 수는 없지 않는가?
대학교 친구들 몇이 온다고 하자 마누라가 와인 한 병을 내놓았다. 얼큰하게 취한 이후의 마지막 와인 한 잔이 풍미를 더한다. 쨍 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메아리쳐 나가는 것 같다. 와인 잔도 제 각각이다. 이참에 와인 잔은 세트로 새로 들여 놓을까보다.
고마운 친구들이다. 가깝고도 먼 이곳까지 우정 찾아와준 친구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건강하여 내년 봄과 여름 가을에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7월 초의 백합은 올해보다 더 만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11월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