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와 능소화
오래 전 교회에서 얻어온 꽈리 한쪽이 매년 식구를 불리더니 이제는 빨간 꽈리가 많아졌다. 제대로 마땅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그늘진 곳에 팽개쳐 두었는데 특히 올해에는 빨간 꽈리가 예쁘기도 하거니와 무척 굵어서 이대로는 아니 되겠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
머위를 몽땅 뽑아낸 자리 옆에 열 대 여섯 쪽을 옮겨다 심었다. 큰 꽈리는 잘라내어 집안에 장식을 하고 몇 개는 꽈리가 달린 채 옮겨 심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준 셈이다. 꽈리의 잎과 고추 잎같이 생긴 하얀 꽃이야 뭐에 볼품이 있겠느냐 만은 가을 정원에 빨간 세모꼴 모양의 열기구 같은 열매가 매력적이다.
예전에 한창 골프를 다니던 수원CC의 첫 홀 입구에 큰 나무가 있고 이 나무를 타고 예쁜 꽃들이 마치 이 나무의 꽃인 양 화사하게 핀 것을 보고 캐디에게 물었더니 능소화라고 하며 본래 이 나무의 꽃이 아니고 나무를 타고 올라간 꽃이라고 알려주었다. 두 쪽을 사서 심었는데 이놈은 무언가 기댈 곳이 있어야 줄기차게 하늘로 올라가는데 마땅한 나무도 없고 하여 몇 차례 옮기다가 전주 옆으로 옮겼는데 전주를 타고 끊임없이 올라가는 통에 난 과감하게 중간을 잘라내었다.
위험해서였다. 혹시 전주 위의 배전함까지 올라가서 문제를 일으키면 이건 낭패일 수밖에.
몇 번이나 캐내어 버릴까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풍수로 보는 정원수(庭園樹) 이야기를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어 잘라내기로 했다. 집안에 능소화가 무언가를 휘감으며 올라가는 것은 풍수상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두 개의 뿌리를 깊이 삽을 넣어 캐내었다. 전주에는 아직도 능소화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너무 높아 잘라낼 수도 없고 더 마르고 바람이 불면 없어지리라.
@2020년9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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