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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큰 어르신

by 빠피홍 2020. 5. 20.

연꽃이 보이지 않고 수생식물만 가득하다. 가운데 빈 공간만이 연꽃이 겨우 버티고있다.

 

 

큰 어르신

 

 

퇴촌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정암천을 바라보면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벌였던 연꽃심기가 떠올랐다. 벌써 2년이 흘러갔지만 이분의 열정과 애착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교우하면서 이분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심코 다시 한 번 정암천 수련 밭을 바라다보았다. 담배를 입에 문채 수련을 심으면서 계면쩍어하던 이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을회관에 곧 들어설 찜질방 부대 공사인 샤워실 수리가 완료되었다는 마을 총무의 카톡이 어제 도착했다. 우리 동네의 사찰인 ‘명성암’ 스님의 제안으로 이분이 노인들을 위한 찜질방을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소식이 들려온 지도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이 마을 임원으로 있는 이유이기도 해서 일산에 있는 찜질방 체험실에 이장과 함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다녀온 적이 있었다.

 

천 여 만원이 더 들어가는 공사다. 세대라고 해야 고작 스무 곳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긴 해도 남종면에서 찜질방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은 우리마을이 유일할 것 같다. 정식으로 발주가 들어갔으니 가을 전에 완성품이 들어올 것이고 이에 맞춰 샤워실과 화장실을 다 뜯어고쳐 찜질방을 맞을 준비를 끝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력이 있다고 하여 크고 작은 곳에 쾌히 돈을 내어 누군가를, 뭔가를 돕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분은 명분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마을회관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한 것에서부터 윗마을로 가는 진입로가 좁다는 이장의 건의에 자신의 사유지를 성큼 내 놓지를 않나, 농기구 등을 보관하는 마을회관 부속 창고의 바닥이 흙으로 되어있어 비만 오면 질퍽거리는 것을 사비를 들여 시멘트 콘크리트로 마감을 해주질 않나 참으로 많은 도움을 주는 분이다.

 

재작년 6월 초에는 동네 앞 정암천 주변에 수생식물을 심어 동네를 예쁘게 하려는 그의 의도대로 사비를 들여 대 공사를 한 적이 있었다. 엄청난 굴착기(내 생애에 이렇게 큰 굴착기는 처음 보았다)로 일대를 재정비하여 언덕에는 금계국과 구절초, 물속에는 수련과 연꽃 수백송이를 심기도 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풀을 베고 연을 심고 구절초도 대량으로 심었다. 이 또한 천 여 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가는 공사였다. 이분의 적극적인 성격 탓에 돈만 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지휘까지 함으로 이분이 계시지 않으면 마을의 새로운 변화는 꿈도 못 꿀 처지다. 이분이 나서지 않으면 누구하나 자진하여 나설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도무지 시골의 인심이란 내 주머니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뒷말만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3월말 쌈지공원 관리문제 또한 마을로서는 골칫거리였다. 누가 어떻게 관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결국 인력과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 특히 작년 11월에 끝난 공사로 인해 잔디에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를 조속히 설치해야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아이디어를 내는 이도 없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도 없었지만 역시 이분께서 진두지휘를 하면서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 호스를 땅 속으로 묻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 만일 이분의 제안이 없었으면 스프링클러를 할리도 없지만 기껏 한다고 해봐야 밖으로 길게 호스를 늘어뜨리는 대책이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논의만 거듭되었을 것이다. 결국 돈 때문에 모든 게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속전속결이다. 큰 회사의 오너답게 결론이 내려지면 즉시 단행한다. 중식과 막걸리 한잔도 물론 그의 쌈짓돈에서 나온다.

 

난, 이분을 그냥  ‘큰어르신’이라고 부른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지도 이분은 모른다. 혹시 다른 기회에 알게 되면 불편해하실까 보아 그냥 ‘이분’ 또는 ‘큰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다.

 

 

@2020년5월16일(토요일)

 

 

2018년 6월에 정암천의 꽃밭 만들기에 사용된 대형 굴착기를 큰어르신이 지휘를 하고있다
굴착기 기사에게 작업지시를 하고있다
수련도 많이 심었었다.

 

멀리 보이는 언덕에는 전 주민이 금계국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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