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 구멍가게 [1]
내가 살고 있는 귀여2리에서 분원리 쪽으로 걸어가면 약 30분 거리다. 수년 전 데크로 만든 둘레길을 이용하는데 산을 깎아 길을 만들지 않고 팔당호 쪽 저지대에 쇠말뚝을 박아 2미터 폭의 데크 길을 깔끔하게 잘 만들어놓았다. 내가 마시는 막걸리를 늘 퇴촌 농협에서 사오곤 하는데 간혹 떨어질 때가 있어 산보 삼아 다녀오기도 한다. 내가 즐기는 ‘장수막걸리’ 하얀 뚜껑은 국내산 쌀로 만든 것이고 파란 뚜껑은 수입산 쌀로 만든 것인데 가격은 200원 정도 차이가 난다. 하얀 뚜껑과 파란 뚜껑의 맛의 차이는 확연히 다르다. 이곳 분원리 가게에는 파란뚜껑만 있고 가격은 400원이나 비싸지만 막걸리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파란뚜껑이라도 사러간다.
집을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10분 거리인 ‘물안개공원’이 있는 귀여1리가 나오고 편의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장수막걸리’ 파란뚜껑을 분원 가게보다 500이나 비싼 2천원에 팔았는데 지금은 그마저 없고 ‘지평 막걸리’만 2500원에 팔고 있어서 이곳에 발을 끊은 지 꽤 오래되었다. 지평막걸리가 내 입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가격이 한 병에 천원이나 더 비싸서 이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강촌슈퍼’에는 무뚝뚝한 할머니가 늘 가게를 지키고 있었고 할머니가 세상을 뜬 이후에는 몸에 장애가 있으나 똑똑한 젊은이가 컴퓨터를 갖다놓고 재고파악도 하는 등 열성적으로 일을 하곤 했었다. 나와는 자주 보는 터라 이런저런 농담도 하는 처지였는데 2년 전 어느 날 가게를 닫는다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문이 닫힌 채 조용하더니만 어느 날 공사를 하고 작년 초에 문을 새롭게 열었다. 버스를 타고 가거나 차를 몰 때도 항상 분원 삼거리에 위치한 이 가게를 지나칠 수밖에 없는데 지붕도 빨갛게 칠을 하고 화분도 몇 개 놓고 여느 구멍가게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었다.
지난 해 초에 막걸리를 살 겸해서 새롭게 개업한 가게가 궁금하여 찾아가 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들린 셈이었다. 문을 들어서자 왼편에 있는 계산대도 약간 높이고 가게 내부가 심플하게 정리된 느낌이었다. 주인도 세련된 모습의 중년 여성이었다. 도무지 이런 곳에 구멍가게를 할 그런 타입의 여성이 아닌 것 같았다. 보통 시골의 구멍가게에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웃음이라고는 볼 수 없는 무뚝뚝한 할머니를 연상하게 되는데 이 주인은 깨끗한 얼굴에 연한 화장도 하고 직업의식이 투철한 느낌이 들었다.
왠 남자가 그림물감을 잔뜩 갖다놓고 벽에 예쁜 꽃과 글씨를 쓰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아니 이런 시골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도 되는 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양쪽 벽의 벽화를 그린 것도 전문 화가였을 것이고 각종 화분과 빈티지풍의 의자와 조각, 그네 등 시골동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들리기로 했다. 가게 옆에 새로운 문을 내어 커피와 라면도 판다는 간판이 보였다. 사실 처음으로 밖에 나와 있는 각종 데코레이션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수시로 이것저것 바뀐다고 느꼈는데 도대체 이 여인은 전직이 실내장식과 정원장식 전문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3월이 오면 어떤 장식을 내 놓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때 ‘강촌 구멍가게 [2]’에서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고 새로운 실내외 장식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1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