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이장
내가 우리 마을의 직전 이장을 알게 된 것은 약 8년 전인가 보다. 48년생으로 나보다 세 살 아래다. 그런데 며칠 전에 그가 세상을 떴다. 그것도 너무나 갑자기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불과 2주 전인데 이웃 어른이 이용구 이장이 배에 복수가 차서 분당에 있는 서울대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내게 일러준다.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으나 병원에 다녀 온 동네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지난 23일 동네의 신임 이장과 이웃 네 명이 함께 동승하여 분당에 갔다. 덩치도 크고 씨름에는 져 본적이 없다던 전 이장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있었으나 꼿꼿이 앉아서 말하는 것은 정상이었다. 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것으로 가볍게 생각한 것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나와는 악연이 많은 지라 내가 병문안 올 줄 몰랐다고 한다. 복수를 제거 하는데도 20여일이 걸리며 간이식도 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현 이장으로부터 아침 일찍 부고 문자가 왔다. 아니 이럴 수가 있을까? 교통사고도 아니고 갑작스런 병으로 이렇게 빨리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오늘 뒷산 산행을 다녀오는 길에 묘소에 들렀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목 옆의 배 밭 안쪽으로 집안 산소가 있는데 이곳에 묻었다고 하여 들린 것이다. 뒤쪽에는 망자의 선대들 뫼가 여럿 있고 이용구 전 이장은 화장을 하여 제일 밑에 묘석과 화분이 함께 놓여있었다. 잠시 묵념을 하고서는 편히 쉬시라고 소리를 내어 몇 마디 중얼거렸다. 당신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나 지난 1년간은 그래도 좋게 지냈지 않았냐고 하면서. 몇 해 전 산행에서 내려오는 길에 배 한 개를 따서 내게 준 기억이 새삼스럽다.
위쪽에 있는 선대 묘
산소 아래로 나 있는 배나무 밭
그는 우리 동네 이장을 20여 년간 했던 사람이다. 마을의 관행이라면서 행하는 모든 활동이 도무지 내 마음에 차지 않아 그와 자주 충돌했었다. 8년 전 이곳에 왔을 때 ‘유박’이라고 불리는 비료 열 포대를 주었고 그 이듬해는 한 포대도 없기에 마침 집에 온 이장에게 올해는 왜 한 포대도 없느냐고 하자 원래는 내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그간 마치 큰 인심을 쓴 양 짜증을 내기도 했다.
매년 12월20일이면 ‘대동회’라고 하여 마을 총회가 열리는데 몇 년 전에는 내게 연락도 없이 그냥 진행을 한 것이었다. 난 왜 연락을 주지 않았냐고 격렬하게 전화로 항의를 했고 며칠 후에는 화해를 하자는 뜻에서 마을회관에서 삼겹살을 구워놓고 날 초대도 했었다. 마을 정관을 보여 달라고 하자 정관이 왜 필요하냐고 하지를 않나 매년 정부로부터 간접지원 자금이라고 하여 약 4천만원 내외의 자금이 배정되는데 이는 반드시 마을 주민회의를 거쳐야 되는 것이었다. 이를 어떤 해는 주민회의를 거치고 지난해는 원주민 몇 명이 모여서 그냥 통과를 시켜버려 난 12페이지에 이르는 ‘공개질의서’를 만들어 동네주민 모두에게 돌리기도 했다.
무언가를 바꿔보려는 생각에 둘의 만남을 자청해서 이런저런 마을의 대소사를 시정했으면 좋겠다는 충언을 하자 고맙다고 하며 명심하여 잘 하겠다고 했다.
쌈지공원
몇 년 전에는 왜 그렇게 이장을 계속하려고 하느냐고 시비를 건 적도 있었지만 이제 그가 갑자기 떠나고 나니 무언가 허무하기도 하고 괜스레 이런저런 시비를 많이 걸어서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가 노력하여 만들어 낸 동네의 ‘쌈지공원’이 이용구 이장을 오랫동안 기리게 될 것 같다.
2020년1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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