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회(大洞會)
이번 주 12월20일, 목요일이 우리 동네의 ‘대동회’ 날이다. 일 년에 한번 있는 마을의 정기총회일인 셈이다. 한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임원도 선출하고 마을의 공통관심사를 논의하고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이 ‘대동회’를 앞두고 난 ‘2018년 정기총회를 앞둔 공개질의 및 건의’라는 12페이지나 되는 문건을 만들었다. 첫 페이지는 인사말과 작성 배경을, 둘째 페이지는 15개 항목의 관심사항을 표로 만들고 세 번째 페이지부터 12페이지까지는 각 항목별로 질의와 건의를 병행하여 나열한 나의 주장이 실려 있다. 오늘 이 문건을 스무 곳 정도의 마을주민에게 직접 전달하여 설명하고 총회참석을 독려할 예정이다.
이곳으로 낙향한지도 벌써 8년째인데 그동안 현 이장과 몇 차례 충돌이 있었다. ‘유박’이라는 비료배포 문제와 이장선출 과정, 결산보고서 문제로 충돌을 했고 이후에는 화해를 하고 잘 지내왔으나 지난 10월에 또 대충돌이 발생했다. 우리 동네는 매년 정부로부터 거액의 마을공동자금이 배정되고 이를 어디에 사용해야할지 주민들이 토론하고 심의를 해야 하는데 올해도 이장과 한 두 사람이 모여 2019년도 ‘지원사업계획’을 면사무소에 제출해버린 것이었다. 이 계획서는 반드시 주민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것인데 법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중대한 하자였다. 전화로 이것저것을 묻자 이장이 버럭 화를 내며 “내가 돈 떼먹었을까 봐요. 짜증나게 왜 꼬치꼬치 따지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현지인으로 구성된 몇 명이 모여 이번 이장은 누구로 한다고 이미 정해놓은 터라 나하고는 더 이상 말을 썩을 가치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제는 이 못된 관행을 깨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면사무소에 몇 차례 들려 ‘정보공개’를 요청하였고 겨우 지원사업 내용을 입수할 수 있었다. 20년을 혼자 이장을 독점해오다 보니 법하고는 거리가 먼 안하무인인 셈이었다.
난 밤 세워 공개질의서를 작성했다. 신임 이장으로 내정되었다는 김씨에게 찾아가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이장이 곤혹스러워할 수도 있는 질의와 건의서를 보여주면서 전 주민에게 이 문서를 배포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문건을 이장에게 보여주어도 괜찮겠느냐고 묻기에 물론 그렇게 하라고 했다. 며칠 후 김씨를 집으로 불러 내가 적극 도와주겠으니 앞으로는 원칙대로 마을을 잘 끌어가야한다고 하면서 직접 만든 회의 진행안과 정관개정 초안을 설명하고 전해 주었다. 그간의 회의진행과 정관의 내용이 너무나 엉망이었기 때문에 참고하라고 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농사만 짓고 사는 사람들의 사고(思考)라는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신임 이장이 될 김씨에게 “마을회관에 붙은 대동회 안내문을 봤는데 ‘일 시’에 시간이 빠져있네요. 몇 시입니까?” 라고 묻자 “뭐, 다 아는데요.”라고 한다. 또 한 번은 역시 김씨에게 “이건 정관에 명백히 위반되는 행위입니다.” 라고 했더니 “정관을 다 외우고 다닙니까? 평소에도 늘 휴대를 해야겠네요.”라고 되묻는 식이다. 나이도 비교적 젊고 반듯하여 기대를 했는데 정말 걱정이 앞선다. 나이 먹고 사회경험을 이들보다 많이 한 사람으로서 불합리를 고쳐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나쁜 관행을 바꿔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하나씩 근거자료를 확보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싸워나가기로 작심을 했다.
@2018년12월17일(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