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노인네도 쉬어가시라 만들어 놓은 대문 밖 의자에도 단풍이 가득하다.
빌라에 산다는 것
어제는 첫 서리가 내렸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잊어버렸던 오래 전 무언가를 찾았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다. 맥문동 잎에 내려앉은 서리와 누렇게 말라버릴 루드베키아 잎에도 곧 눈이 내린다는 신호가 온 듯하다.
지난 9월초부터 낡은 옛집을 헐고 새롭게 집을 지으려고 몇 개월째 공사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입을 댄다고 하여 더 잘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어서 거저 궁금한 것 정도만 묻고 정원에 앉아서 우두커니 보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정원 일만 할 뿐이다.
2,3일 공사장의 일이 없어서 임시로 살고있는 빌라에서 딱 하루 꼬박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TV도 잘 보지 않아서인지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고 책이라도 볼 요량으로 이것저것 뒤적였지만 이내 내려놓고 말았다. 블로그에 올릴 글이라도 써볼 셈으로 책상에 앉아보아도 심드렁하다. 딱히 쓰고 싶은 것도 없어서이다.
지난 몇 주간 메이저리그의 월드시리즈 방송에 흥분했던 열정도 LA다저스의 패배로 식어져서 마지막 7차전은 재방도 보지 않았다. ‘다르비시’인지 ‘가르비시’인지 일본인 투수가 초반에 박살이 나서이다. 5차전인가 6차전은 ‘마에다’가 망쳐버렸고 ‘류현진’이 올라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공연한 아쉬움에 화가 나서이다.
올 들어 처음 핀 엷은 첫서리 꽃이 루드베키아와 맥문동 위에 앉아있다.
친구들은 대부분 아파트나 빌라에 생활할 텐데 어떻게 지낼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디엔가 자주 나가고 싶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가까운 곳이면 모르겠으나 멀리 나가는 것도 부담이 될뿐더러 자칫 실수라도 하면 사고로 이어지니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나이 든 사람들이 왜 전원으로 가서 텃밭도 가꾸고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면서 소일하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시골 생활이란 그냥 가만히 있도록 놓아두질 않는다. 특히 이맘때면 겨울채비를 위해 부지런해야 한다. 나무에 덮개를 씌워주고 한비(寒肥)도 미리 주고 낙엽도 긁어모으고. 그리고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지난날을 회상도 하고 쉬는 것이다.
난 지금 미완(未完)의 집 앞 정원에 홀로 앉아 지핀 불을 마주하고 내가 좋아했던 노래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왁스’의 ‘화장을 다시 고치고’의 가사와 멜로디가 좋다. 계은숙도 좋아하지만.
같은 노래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오수(午睡)에 살짝 빠진다.
친구들, 서울 집 비쌀 때 팔아치우고 전원으로 내려오시게! 세상이 달라집니다.
@2017년11월10일(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