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차한잔 마시며

이웃

by 빠피홍 2017. 6. 24.


새마을지도자 집에서 날아온 것이 확실한 분홍초롱꽃


오래 전에 심어두었던 하얀색의 초롱꽃



이웃

 

이곳 남종면으로 내려온 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인생이었지만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일도 해보았고 사업이랍시고 많은 직원을 거느린 채 행세 꽤나 한 적도 있었다.

생업을 접고 나서 쉰다는 것도 여유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보니 마음 놓고 다닐 수도 없는 처지여서 정원에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젖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조그만 사건에도 의미를 두는 일이 잦아졌다.

 

엊그제만 해도 그러했다.

3년 즈음 내가 심지도 않았는데 정원 구석진 곳에 심어 둔 섬초롱 꽃과 똑 같은 풀잎 하나가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더니 어느새 새끼 잎들이 여기저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몇 년 지나자 제법 무리를 이루었다. 몇 년째 꽃도 피지 않아 잎이 섬초롱 닮은 잡초일 것 같기만 하여 뽑아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었었는데 며칠 전에 꽃이 피어났다.

깜짝 놀랐다. 분홍 빛깔의 섬초롱꽃이었다. 우리 집에서 2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새마을 지도자의 앞마당에 있는 그 초롱꽃이었다. 아니 그 초롱꽃과는 다른 듯 보였다. 분홍색이 더 맑고 짙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새마을 지도자 집 마당에 잔뜩 피어있는 초롱꽃을 몇 개 캐다가 심으려고 이미 허락을 받아둔 터여서 당장 가서 확인을 하고 싶었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몇 년 전 일본에 갔을 때 동경 메구로역 근처의 노상에서 파랑의 초롱꽃을 기쁘게 본 적이 있었고 파란초롱꽃을 동네 꽃집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한 뿌리에 만원을 주고 심어두었지만 종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일도 있었던 터라 혹 돌연변이 초롱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빨리 확인을 하고 싶어졌다.


우선 꽃 잎 하나를 따서 집에 피어있는 꽃과 비교를 해보니 똑 같은 색이었다. ! 이건 바람을 타고 날아 온 것이구나, 그랬다. 바람을 타고 우리 집 잔디밭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새마을 지도자 집의 섬초롱은 벌써 지려고 하는데 우리 것은 왜 이제야 필까하고 궁금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대가 몇 군데 잘려있었다. 이건 고라니 짓이었다.

산에 있는 고라니가 간혹 밤에 내려와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잠을 자다가 내게 들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냥 잠만 잘리는 없었을 것이고 제일 연한 잎인 섬초롱꽃의 잎을 먹었을 것이다. 하얀 섬초롱꽃이 모여 있는 뒤쪽에도 잎이 잘려나간 흔적들이 꽤 있었고 그렇게 많이 피던 꽃들이 올해는 겨우 두 그루만 피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둥지에서 떨어진 박새 한 마리


우편함 문을 열자 입구에 몰려있던 새끼들이 푸드덕 거리며 몇 마리가 동시에 비행을 했다.

드디어 이소를 한 것이다. 한 마리는 바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서 짹짹거린다. 일곱 마리가 모두 성장을 하여 주인인 내 앞에서 이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놈들이 3주 만에 그들의 둥지였던 우편함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다. 주인인 나의 허락도 없이 어느 날 제집처럼 차지하더니 드디어 내게 인사를 하고 떠난 것이었다.

 

흰 초롱꽃 밖에 없는 우리 집 정원에 분홍 초롱꽃이 숨어 들어와 제법 무리를 이루며 터를 잡아 한 식구가 되었고, 밤이면 몰래 들어와 잠을 청하고 새순도 따 먹고 사라졌던 고라니, 우편함을 마치 제 집인 양 둥지를 틀고 나로부터 보호를 받았던 박새들도 떠났다.

 

너저분한 둥지를 물로 깨끗이 청소를 했다.

모두 나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이웃이지만 전원생활의 단편 인양 거북하거나 짜증스럽지 않아서 좋다. 박새 새끼들이 푸드덕거리며 동시에 높이 솟구던 비상(飛翔)의 모습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2017623

 

 

 

 


'차한잔 마시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무(雲霧)  (0) 2017.07.23
쇠뜨기  (0) 2017.07.07
산다는 것과 사는 것  (0) 2017.06.14
지갑 잃어버린 날  (0) 2017.04.04
삐라와 맥주 한 캔  (0) 2017.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