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와 맥주 한 캔
어제 산행에는 동네에 거주한다는 수녀와 동행을 하며 세 시간이나 걸었다.
경상도 언어를 쓰는 키 큰 수녀는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으며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동네 일반 집에서 요양을 한다면서 정치에 꽤 관심이 많은 듯 내게 묻기도 하고 자기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같이 걸으면서 그녀가 궁금해 하는 걸 예를 들어가면서 자세히 내 생각을 밝혀주자 도움이 되었던지 헤어질 때 많은 걸 알게 되어 고마웠다고 인사까지 건네 왔다.
오늘은 다른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경사가 꽤나 심한 곳인데 계속 올라갔다. 등산로는 아닌 것 같은데 붉고 푸른 리본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걸 보면 간혹 이용하는 코스이긴 하나보다.
낙엽이 많이 쌓여있고 경사가 45도 이상이어서인지 자꾸 미끄러진다.
여기저기 이북에서 날아온 삐라가 보인다. 종류가 다섯 가지나 된다. 모두 주었다.
“승리는 영원한 조선의 것이다”
“사형선고장, 청와대마녀의 더러운 목숨을 건지려고 이 땅을 피바다에 잠그려는 역적무리들을 군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친박깡패들의 가소로운 계엄령선포 난동”
“세계가 흠모하고 따르는 절세의 위인”
북조선이라는 갈라파고스에 살고 있는 이들이 왜 이런 삐라를 뿌리는지 정말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뒷면에는 노래 가사와 악보까지도 있다. 이번에도 퇴촌파출소에 전달해야겠다.
너무 높은 곳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중도에 내려오기로 방향을 돌렸는데 이 높은 산에 왠 비석이 큰 나무 옆으로 살짝 보인다. 봉분이 있어야 할 곳에는 소나무와 잡목만 있고 비석만 달랑 서 있다.
수목장이라도 한 것일까 의아해서 옆면을 보니 ‘戊午年 二月 七代孫’ 조아무개라고 쓰여 있다. 묘비의 재질과 서체를 보아서는 최근의 것으로 보였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1978년 즈음인 것 같다. 매우 험준한 이곳에 왜 비석을 세웠을까 궁금해 하면서 길이 없는 비탈로 내려왔다.
봄이 성큼 다가온 듯 날씨가 따뜻하다.
갈증이 난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동네 슈퍼에 들려 카스 한 캔을 마시면서 잠깐 앉아서 쉬고 있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 봄이 오는 구나”
@2017년3월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