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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지갑 잃어버린 날

by 빠피홍 2017. 4. 4.



지갑 잃어버린 날


 

지난 목요일 오후 4시는 울릉도 초등학교 친구 네 명이 모이는 날이었다. 모두 서울에 올라 온지도 60년이나 되어간다. 몇 개월에 한번 만나서 소주잔 기울이고 옛 날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겨 모이곤 한다. 초등학교 친구, 특히 동해의 외로운 섬 울릉도의 친구들이고 보니 할 이야기도 너무나 많다.

 

오늘은 이 원대라는 친구가 모임을 주관하는 날이다. 은퇴 후 자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다른데 갈 것 없이 친구 식당에서 자리를 했다. 샐러드, 부침개, 홍합찌게가 나왔다. 깔끔한 맛이 나는 술안주였다. 손님들이 꾸역꾸역 들어오고 우린 일어서기로 했다. 주인장의 부인이 다른 약속이 있어 식당에 나오지 않아 일손이 모자라는 듯 바삐 움직였다.

 

모두들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가던 중 무언가 부족한 듯 아쉬운 감이 들었다. 그것은 육미(肉味)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모두 동감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자 식당이 보였다. ‘서울면옥 숯불갈비였다. 앞서 마신 것도 있고 하여 삼겹살 2인분에 소주 두병으로 간단하게 아쉬움을 달래자고 한 것이 술도 추가요 고기도 추가였다. 난 소주를 잘 먹지 않는 편인데 어쩐 일인지 술술 잘 넘어갔다.

또 한곳을 더 거치고 경기도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약간은 휘청거리며 걸어오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돌아보니 도 정웅 친구였다. 10여 미터 뒤에서 계속 따라왔다고 했다. 집도 멀고 걸어가는 모습이 뒤뚱거려서 걱정이 되어 뒤따라왔다고 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우리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머플러도 지갑도 보이지 않는다. 술 약속이 있는 날은 난 조그만 숄더백을 항상 메고 나가는데 모든 걸 무조건 집어넣는 것이 안전해서이다. 그럼에도 숄더백 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시간은 벌써 12시가 넘은 것 같다. 술이 취한 상태로 카드사 두 곳에 전화를 한다. 카드 사용 중지 통보였다. 집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곧이어 잔소리가 이어진다.

 

이튿날 오전에 고덕동 식당을 누벼보아도 한 곳은 찾을 수 있는데 마지막으로 간 곳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 식당이 양배추에 닭볶음을 먹은 곳 같은데 내부 좌석은 기억이 나는데 외관과 상호는 전혀 기억이 없다. 친구들에게 전화로 마지막 먹은 식당이 어디쯤인지를 묻자 마지막에 또 마셨던가 하고 내게 거꾸로 물으면서 전혀 기억을 살리지 못한다.

모두들 많이 마시긴 마셨나 보다. 주인장에게 혹시 지갑 보관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파출소에 가서 분실신고를 했다. 마누라 신분증까지 포함하여 내 신분증, 운전면허증, 현금 11만원, 카드 두 개, 손자 사진과 기타 카드 다수 ...

 

사흘 내내 집사람과 말이 없다. 내가 안방으로 가면 집사람은 응접실로 나온다. 겨우 점심만 차려주는데 싱크대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내 귀를 때린다. 달그락달그락.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다고 한마디 했을 텐데 그냥 꾹 참고 만다. 온갖 후회가 엄습해 온다. 처음에 먹던 청하만 마실걸, 왜 안 먹던 소주까지 짬뽕으로 마셔 정신을 놓았는지 정말 짜증이 난다.

 

닷새째 되는 날, 건축 인허가관계로 어려움이 있던 참인데 마침 좋은 소식이 있어서 얼른 이 기회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이 나서 미안하다고 슬쩍 이야기를 하고 기쁜 소식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자 집사람이 한 말씀 때린다.

 

안 먹던 소주를 먹다보니 그렇게 되었구만.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앞으로 밥이라도 제대로 얻어먹으려면 신경 쓰이는 일 하지 마.”

알았어. 주의할게

 

꼬리를 내릴 수밖에. 후유! 겨우 살았다.

 

@20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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