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쪽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작게 보인다
도로 옆 우편함에 안내표시가 보인다.
이 곳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산다는 것과 사는 것
며칠째 집도 없는 빈 정원에 나와 이런저런 잡일만 하고 있다. 잡초도 뽑아내고 바람에 날아와 엉뚱한 곳에 뿌리를 박은 꽃들을 제자리를 정하여 옮기기도 한다.
새집을 지으려고 옛 집을 헐어버렸는데 상수도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건축 인허가가 쉬 나오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하다.
오늘은 가뭄으로 잔디가 메말라 있던 터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물을 주고 있다. 360도 회전하면서 뿜어대는 물줄기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햇볕에 반사되어 그려내는 반원 모양을 보며 차분한 마음이 된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는 것이 무엇이지 하고 불현 듯이 의문이 나온다.
분수기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쉼 없이 햇볕에 반사되어 그려내는 아지랑이 현상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아지랑이와 낮술이 묘하게 아우러지면서 약간의 몽환에 가까운 무의식이 나로 하여금 이런 자문(自問)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 그렇지 2주 전에 우편함에 둥지를 튼 새끼들이 이소(離巢)했는지 궁금해졌다. 우편함을 열어 안쪽을 들여다보자 어미도 보이지 않고 새끼들도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안쪽에 있는 짚을 걷어내자 갑자기 새끼들 몇 마리가 푸드득거렸다. 어이쿠! 큰일 날 뻔 했다. 새들이 떠난 줄 알고 지푸라기를 마구 걷어내었다면 정말 큰 일이 생길 뻔 했다. 새끼들을 다시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새이지만 좁은 우편함 입구로 들어가서 둥지를 튼 것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 많은 지푸라기와 마른 이끼들을 물고 와서 보금자리를 만든 새였다. 우편함에 둥지를 튼 것이 처음이어서 약간은 놀라 우편물을 밑에 놓아 달라는 안내문도 붙여두었다. 이놈은 조금은 늦게 알을 까고 새끼를 낳은 감이 있으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새 전용 집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편함이든 새 전용집이든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둥지를 틀어야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지난달에는 주목(朱木)에 둥지를 튼 새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안을 들여다보자 새끼 다섯 마리가 제 어미인줄 착각하고 지져대었다. 그리고 며칠 후 둥지를 확인했을 때는 텅 비어있었다. 이놈들이 아직 떠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미련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아니면 뱀이 먹어버린 것일까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둥지가 깨끗한 걸 보아서는 제 어미가 데리고 간 것 같기도 했다.
집이 낡아서 헐어버리고 노후를 새집에서 살려고 했는데 간단치가 않다.
이름 모를 새들이 우리 정원에 두 마리나 와서 한 놈은 주목에서 멋진 집을 지었고 또 다른 한 놈은 우편함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곧 이소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내가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삶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공연한 생각에 집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새끼들과 넘어가는 석양에 비치는 물줄기를 보면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석양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오직 낮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17년6월13일(수요일)
주목 속에 둥지를 틀고 예쁜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