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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야기

노인회

by 빠피홍 2023. 1. 1.

 

 

노인회

 

 

지난해 9월인가 우리 마을에도 노인회가 결성되었다. 65세 이상이면 노인회 가입 자격이 있다고 한다. 대충 20여명은 족히 될 성싶다. 회장의 부탁이 있어 우리 마을 노인회의 정관을 만들어 주었으나 임원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은 거절했다. 일체의 모임 임원은 맡지 않기로 이미 결심을 한 터라 뒤에서 무엇이던 도와주겠다고 했다.

 

우리 마을 노인회에 나오는 정부 지원금이 연간 360만원이라고 한다. 매월 30만씩이며 이 돈의 사용처는 오로지 먹는 데만 국한되어있다고 한다. 슬리퍼 한 장도 구입할 수 없으며 음식을 외부로 반출도 못 한다고 수차례 강조를 한다.

 

지난 연말에 결산보고를 겸한 회의가 있었다. 별도의 보고서 없이 보관하고 있는 영수증을 펼치면서 사용설명과 동시에 소소한 금액을 읽어 내려갔다. 명색이 총회인 셈인데 수입지출 만이라도 알 수 있는 종이 한 장이면 될 것을 두서없이 긴 시간을 내어 영수증을 보며 설명하는 것이 내 눈엔 너무 안쓰럽고 초라해보였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을 전부 바보 멍청이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쟁점이 된 것이 음식물 외부 반출금지 건이었다. 예상 인원보다 적게 참석하여 음식물이 남으면 참석하지 못한 노인들 집으로 가져다주면 좋겠는데 이건 절대 안 된다고 누차에 걸쳐 강조를 하는 것이었다. 광주시 노인회지부 직원들과 수차례 통화를 한 결과라고 했다. 내가 그럼 어떻게 할 계획이냐며 문제 제기를 할 즈음 손님들이 들어오는 와중에 토론도 못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회장의 성격이 소탈하고 농담을 좋아하고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어서 잘 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활동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노인회 모임의 기본 개념정립이 부족한 것 같아서 내가 얼마든지 도와주겠다고 해도 반응이 없다. 그러나 이건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것이어서 의견을 내어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 너무 답답할 뿐이었다.

 

작년 초 이장을 초대하여 A4용지 한 장에 빼곡히 적은 건의안을 토대로 단 둘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던 것처럼 올해는 이장과 노인회 회장을 같이 초대하여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오랫동안 길 들여져있는 사고방식을 쉽게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라 설득방법을 바꿔야겠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저녁에 전화가 와서 마을회관에 갔더니 오징어김치전에 술 한 잔 하고 있었다.

 

술이 몇 차례 돌고 자연스레 노인회 이야기가 나와 쟁점이 된 두 가지를 꺼내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총회에는 구차하게 길게 설명하지 말고 간단하게 서류를 준비해서 보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자 그럴 필요 없이 영수증을 회관에 두었으니 필요한 사람이 보면 된다고 억지를 부린다. 할 말이 없다. 음식이 남으면 미참석자에게 가져다주면 좋은 이유를 길게 설명을 해도 가타부타 답이 없다.

 

마을 일이건 노인회 일이건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할 터인데 그냥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음 달에 옆 동네 식당으로 초대하여 진지하게 설득을 해봐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춥고 밤늦은 마을길이 을씨년스럽다.

 

 

@2023년1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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