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동인
추운 날을 피해 간다는 것이 지난 수요일이다. 눈이 조금씩 내려 약간 걱정이 되었으나 예보대로 날씨가 겨울 같지는 않다. 마석우리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전화로는 자주 연락을 취하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수 년 간 만났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한 해가 이렇게 또 넘어가는 것이 무언가 아쉬워서일까 용문에 있는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 모두 한반도의 중앙이나 동쪽에 살고 있는 셈이다.
1961년 고등학교 시절 만난 이후로 정확히 60년이 되는 해에 기념 모임이 된 셈이다. 우린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생활과 각자의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줄곧 쉬지 않고 연락을 취하며 지금까지 우정을 쌓고 있다. 고2 때인가 용문에 있는 친구 성수가 주동이 되어 문학 동인을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엉겅퀴 동인’이 된 셈이었다.
참으로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오묘한 것 같다. 이를 계기로 하여 이들 둘은 대학을 국문과로 지망했고 그것이 인생의 긴 여정에 직업이 되고 삶의 토대가 되었으니 어찌 재미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용문의 친구는 정 성수다. 몇 년 전 문인협회의 시분과위원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부이사장으로 있는 원로시인 정 성수(丁成秀)다. 중학생 시절부터 ‘개척자’라고 하는 시집을 낸 이후 지금까지 많은 시집을 냈다. 기존에 있는 각종 기호를 따와서 의미를 부여하는 ‘기호 여러분’인가 하는 시집과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시집을 낸 것은 문단에 하나의 충격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2008년도에는 ‘한국문학 백년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어 시상식에 다녀온 바도 있지만 많은 수상을 한 친구이다. 내가 힘들어 할 때 ‘친구 홍상표에게’라는 짤막한 시도 써주었다.
남양주 마석우리의 친구는 박 춘기(朴春基)다. 대학시절 중대(中央大) 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준재였다. 특히 ‘빙운을 타는 제비들’이라는 단편 소설은 당시 백철교수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이었다. 청량리 자취방에서 우리 엉겅퀴 멤버들이 출품 전 작품을 돌아가면서 읽고 품평도 했던 작품이 당선작이 되었으니 그의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중앙 문단에서 활동하는 것에 별다른 관심두지 않고 에세이와 연극 평이나 미술평을 간간히 발표할 뿐 본격적인 문예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늘 아쉬웠었다.
이번에 모처럼 그의 근황을 알게 되어서 그나마 기뻤다. 건강도 좋아졌고 고향인 마석우리에서 에세이스트로서 향토사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치밀한 그의 성격대로 모아 둔 각종 자료를 활용하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옛날 춘기 집으로 가던 꾸불꾸불한 길은 사라지고 고속도로가 우릴 안내했고 조용한 마을은 어느새 서울처럼 큰 도시로 변해있었다. 수십 년 전 마석 강가에서 고기 잡던 일, 뒷산에서 다래를 따던 일, 깜깜한 밤에 우정 산속으로 잠행을 하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오늘은 ‘엉겅퀴 동인’이 모인 뜻깊은 날인가 보다.
@2021년12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