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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친구, 박 춘부

by 빠피홍 2021. 4. 20.

 

서부해당화가 만개했다. 내 친구 춘부의 건강도 이렇게 따스한 모습으로 빠르게 회복되기를 희망한다.

 

 

친구, 박 춘부

 

 

오늘 춘부 내외가 나의 누옥을 찾아왔다. 다른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과 비교하면 춘부는 나와 가까운 곳인 양평에 거주하고 있다. 그것도 그가 한 때는 정주하는 곳이었으나 몸이 아픈 이후로는 간혹 들리는 곳이 되었으나 지금은 다시 정주할 모양이다. 우리 친구들은 몇 차례 ‘옥천냉면’ 동네를 거쳐 그의 집에 들린바가 있어 익히 알고 있다.

 

춘부 본인이야 한 두 차례 나의 옛 구옥에 온 바가 있으나 젊고 아름다운 춘부의 아내와 함께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난 아직도 그녀가 내게 선물로 준 오데토일렛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아끼면서 간혹 외출 시에 사용하고 있다.

 

내일 부부가 온다기에 꼭 사오려면 작업용 면장갑이나 몇 켤레 사오고 다른 것은 다 있으니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했음에도 박스 몇 개나 되는 것들을 잔뜩 사들고 왔다. 딸기와 사과 큰 봉지에 옥천 해장국 그리고 각종 떡과 지평 막걸리 여섯 병과 함께 잊지 않고 작업면장갑 한 뭉치를 들고 왔다.

 

그리고 우리 집 정원에 있는 야생화를 몽땅 뽑아 가기라도 할 요량인지 검정 비닐봉지를 한 움큼 들고 왔다. 그냥 오면 어떠랴. 체면 차릴 나이도 아니고 그냥 면장갑 몇 개라도 사들고 오면 좋은 그런 나이가 아니던가? 내 전문인 밥 짓기를 해서 따뜻한 밥에 춘부가 가져 온 해장국만으로 점심을 했다. 무슨 예의를 지키는 절차가 필요하랴. 그냥 들려서 이런저런 옛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다보면, 그리고 막걸리 몇 잔을 걸치기라도 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을.

 

1980년도인가 이제 기억에도 아물아물 하지만 잠실 주공아파트 그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새 색시가 장만한 맛있는 요리에 춘부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신혼 집들이를 한 셈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성격은 매우 외형적이며 사업가답게 통 큰 자세로 매사에 임하는 것 같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매우 소심한 성격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에 들어와서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눈 적도 없거니와 그는 운동을 즐겼기에 나와는 더 더욱 인연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을지로 그의 사업장에 몇 차례 찾아갔고 대학 동기회를 운영하면서 회장과 충무를 그와 번갈아 했으니 이런저런 기회에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박 춘부!

모임에서 언제나 유머와 입 바른 소리로 좌석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그였다. 친구 아무개는 춘부의 입 바른 소리에 삐쳐서 지금까지 모임에 나오지 않는 이도 있으니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 모두 그의 순수성에 동감하고 그를 좋아한다.

 

그런 그가 3년 전인가부터 몹쓸 병에 걸려 병마와 끈질긴 싸움을 벌여 이제는 막걸리도 몇 잔 마시고 완쾌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회복이 빠른 것은 낙천적인 성격이 클 것이다. 그는 성격상 삶에 대한 생사고뇌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와중에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는 그의 담배. 정말이지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한다. 그 지겨운 담배와의 인연은 이제는 끊어야 한다.

 

예쁜 그의 두 딸이 이제는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인가 기억에도 생생하지만 TV에 나와서 멋진 노래를 부르던 그의 딸, ‘젬마’라는 예명으로 실력파 가수가 된 그의 둘째 딸이 초등학교 입학 전후였던 것 같은데 조 동재 친구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던 그 때가 엊그제였던 것 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자! 무엇부터 우리 집 정원에 있는 꽃을 시집보낼 것인가? 일단 춘부와 그의 아내에게 간단하지만 안내를 하면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많은 꽃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가급적 양평 그의 집에 머물 계획이라고 하니 야생화 한 포기라도 애정을 가지면서 몸을 다스리면 한결 좋아질 것이다.

 

이것저것 꽃들을 삽으로 캐내는 날 보고 한 개 한 개만을 외친다. 최소한 두 개를 심어야지 한 개가 죽더라도 다른 한 개가 살아남지 않겠는가? 내가 알아서 어떤 놈은 작은 것으로, 어떤 놈은 큰 삽으로 떠서 화분에 담고 있음에도 별 걱정에 잔소리를 다 한다. 꽃을 캐낸 이후에 가운데 공간이 비면 어떻게 하느냐느니 흙을 어디서 가져와 메꾸느냐 느니 내가 알아서 할 일을 걱정을 해댄다.

 

많아 보여도 스무 종류도 아니 된 것 같다.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려 비가 조금씩 뿌리고 바람이 불어 약간 어수선한 느낌도 있었으나 빨리 가서 심어야 한다고 한다. 이름표도 달아야하는데, 키 큰 꽃과 중간형, 소형 꽃의 배치는 어떻게 할지 이 모든 것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에게 분양한 꽃을 내가 익히 꾀고 있는데 이름표와 꽃의 배치를 다음에 그의 집을 찾아가서 일러주어야겠다.

 

그가 돌아간 후 짧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난다. 무언가 아쉬운 생각이 든다. 무엇에 쫓기듯 후다닥 왔다가 후다닥 떠나버렸으니 조금 전의 왁자지껄했던 자리는 그저 고요할 뿐 늙은 촌부의 손에는 어느새 막걸리 잔이 손에 들려져 있다.

 

그곳이나 이곳은 추위가 장난이 아닐세. 가져 간 꽃들에 당분간 물 열심히 주고 올 겨울이 오면 부직포 천으로 단단히 덮어주면 내년 봄에 돋아나는 새 순은 정말 큰 기쁨이 될 것이네. 그리고 생명의 의욕이 더욱 솟아날 것이네. 소주는 가급적 줄이시고 와인이나 막걸리로 바꾸시게.

 

 

 

@2021년4월17일

 

친구가 떠나고 약간 비에 젖었던 꽃복숭아가 싱싱하게 다가온다.
친구의 부인이 내게 선물해 준 오데토일렛.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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