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 비비추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르겠다. 줄기차게 비가 내린다.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도 빗방울이 굵거나 혹은 가늘게 계속 내리고 있다. 테라스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거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창 너머로 무늬 비비추가 눈에 들어온다. 꽃이 하늘을 보지 않고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탓에 자칫 지나치기 십상이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화려하게 정원을 독차지했던 백합도 다 지고 천인국도 제비고깔도 잎이 마르고 내년을 준비하는 듯 시들고 있다.
엊그제 세상을 떠난 허원택의 모습이 갑자기 눈에 들어온다. 같이 골프를 한 것만 수 십 년은 족히 될 것이다. 그의 부인과 집사람과 같이 대명콘도에 머물면서 공을 쳤던 때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던 그가 폐암으로 생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최근에 그를 못 만난 것이 아마 3~4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모임에 나오지 않아 궁금했었는데 힘든 병마와의 싸움이 있었던가 보다.
친구들이 하나 둘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요즘은 우리네 명줄이 팔십이 기본이라는데 이렇게 알게 모르게 떠나고 있다.
목이 마르다.
비를 흠뻑 맞고 있는 비비추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느새 내 손은 막걸리 뚜껑을 따고 있다.
@2020년8월10일(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