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7천보
잔디가 빨리도 자란다. 올해 들어 첫 잔디를 깍은 지가 열흘이 조금 지났는가했는데 벌써 잔디가 많이 자랐다. 내일은 잔디를 깎아야겠다. 이웃집 큰 어르신은 벌써 세 번이나 깎았다고 한다.
나이 팔십이 내일모레인데 아직도 작심삼일이다. 무슨 결심을 하면 그대로 실행할 나이인데도 이런저런 핑계로 젊었을 때와 똑같이 조그만 계획일지라도 며칠 만에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술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그렇지만 내가 매일 마시는 막걸리만 해도 그렇다. 하루 한 병으로 줄여야겠다고 작심을 한지가 벌써 몇 년째다. 족히 하루 두 병은 해치우는데 이게 실은 많이 마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겨울은 겨울대로 밤이 길어서 마시고 봄이나 여름은 정원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보면 땀이 흐르고 자연스레 막걸리를 마시게 된다. 해가 지기 전에 벌써 한 병은 기본이다. 이쯤 되면 이건 알콜 중독이다. 일 년이 365일이니 이곳에 내려 온지 칠 년 째 매년 장수막걸리 700병은 음주정석(飮酒定石)이 되고 말았다.
“병 나면 그것도 못 마셔요”
우리집 아내도 술 좀 줄이라고 매번 잔소리를 하더니만 이젠 지쳐 간혹 한 마디씩만 한다.
작년 6월 백내장 수술 때는 꼭 한 달 간 술이라고는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나사가 풀려서일까 양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최근에 와서 무척 안온하고 평온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막걸리 한잔에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잠깐 꾸벅 잠들 때가 아 이것이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벌어놓은 것이 별로 없는지라 집사람이 늦은 나이에 생활비 보태느라 직장 다니는 것도 안쓰럽고 사업하느라 여기저기에 진 신세를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는 딱한 처지지만 그래도 아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직 팔십도 되지 않았음에도 정원관리도 잔디를 깎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파드득 놀라기도 하나 그래도 평안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어제 목사부인이 그의 어머님과 함께 우리집 정원을 돌면서 꽃 이름을 몇 차례나 이야기 하길래 꽃마다 이름표를 붙이기로 했다. 몇 년 전에 간판전문점에서 꽃 이름을 인쇄한 이름표도 주문 제작해서 사용했지만 고급스럽지 못해서 대부분 빼버렸는데 유성 네임펜이지만 다시 쓰서 붙이기로 했다. 매번 목사부인이 내게 묻는다. 꽃이 100개는 넘지요 라고. 네, 백개는 훨씬 넘습니다라고 답을 해주어야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른쪽 종아리 쪽에 저림 현상이 있어서 천호동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많이 좋아졌는데 이젠 허벅지 안쪽에 저림 현상이 옮아와서 계단 오르내리기에 매우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계단 내려오기가 너무나 조심스러워 나 자신 약해진 다리에 놀라 일주일 전부터 다시 산행과 걷기를 시작했다. 역시 7천보가 목표다. 일주일 사이에 확 달라졌다. 비록 1.6킬로미터 밖에 안 되지만 거침없이 올라간다. 평지 걷기보다 가벼운 산행이 난 더 좋다. 허리에 느껴지는 기분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저녁 여섯시 경이어서일까 그늘 진 숲 속에서 보는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볕이 싱그러워 보인다. 숨을 내 쉬면서 무언가를 성취한 이후의 행복감을 느낀다.
6월부터는 특별한 주제 없이 시골생활의 일면과 내 정원에 피는 잔잔한 꽃들을 매일 사진으로 게재해볼까 한다.
@2020년6월1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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