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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의 일상

상사화

by 빠피홍 2020. 4. 30.

흙 반 돌 반의 땅을 뚫고나오는 상사화 막내다

 

상사화

 

 

상사화는 신기한 꽃이긴 하나 잎이 솟아나면 두툼하고 긴 줄기가 주위를 꽉 채우고는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뿌리는 꽤 굵다. 웬만하면 추위에도 잘 죽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핑크빛의 상사화가 새끼를 쳐서 40여개가 넘는다. 이제 곧 잎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기다란 꽃대가 올라올 때까지 약 두어 달(내 기억으로는 그렇다)은 맨 땅이다. 그냥 맨 땅이면 그래도 좋으련만 이곳에 무수한 잡초들이 잠깐 사이에 땅을 다 차지해버려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게으른 주인의 냄새가 풍긴다. 바닥 깔개로 덮어두면 되겠지만 미관상 좋지도 않고 자칫 꽃대가 올라오는 시기를 놓치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꽃이 아니다.

 

분홍색 상사화가 가득 피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꽃과 잎이 살아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꽃이기 때문일까 애틋한 생각도 드는 우리 집 식구다. 아침에 상사화 주변에 딱딱한 흙덩어리가 불쑥 솟은 걸 보았다. 다른 상사화는 이미 잎을 다 들어내었는데 이놈이 늦잠을 잤는지 이제야 그 힘든 딱딱한 땅을 열려고 하고 있다.

 

실은 지난 해 11월에 흙을 받으면서 이곳이 지대가 낮아 돌이 많이 섞인 흙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사화가 심겨져있는 위에 흙을 가득 붓고 통행을 하였으니 땅이 돌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그래도 모두 서른 개가 넘는 상사화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왔는데 이놈은 이제야 바위덩어리만큼 큰 흙덩어리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

 

아!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가 떠올랐다. 그리고 생명력이었다. 그 작은 뿌리 하나로 돌덩어리처럼 굳어져버린 땅을 온 몸을 바쳐 삶에 도전하는 의지였다. 밀어올린 흙덩어리가 하나의 돌이었다. 사진을 찍고 얼른 흙덩어리를 떼어버렸다. 아직도 잎 색깔이 새순의 노랑 끼가 많다. 흙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무런 불평도 없이 묵묵히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는 그 의지력에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020년4월27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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