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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의 일상

수선화 사연

by 빠피홍 2020. 4. 28.

 

수선화 사연

 

 

몇 년 전 양평에 있는 힐하우스 호텔 본관 앞에 있던 꽃이 수선화였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수선화를 직접 대면한 첫 번째였던 것 같다. 노랑 색깔에 다소곳이 고개 숙인 꽃이 너무 좋았다. 인터넷으로 몇 개를 사서 심었는데 매년 새끼가 조금씩 늘어나 지금은 오십여개가 넘은 것 같다. 종류도 예닐곱 정도로 늘었다. 큰 벚나무 옆에 수선화가 터를 잡았고 그늘이 약간 걱정이 되었으나 매년 꽃들이 잘 피워주었다.

 

작년 가을 즈음이었는데 꽃들은 이미 졌고 잎마저 말라버린 상태였는데 잡초가 많이 올라와 이를 막으려고 매트로 덮어버렸다. 이곳에 각종 기구나 쓰레기통을 올려놓아 잡초를 방지할 겸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 이후 11월 경 이곳을 정리하려고 매트를 들어보니 하얀 순이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매트가 보온효과를 발휘해 이놈들이 봄이 온줄 착각했던 것 같다.

아니 땅 속 저 깊숙한 곳에서 잠을 자고 있어야할 것들이 벌써 새순이 올라오다니 난 깜짝 놀라 이를 어찌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가위로 다 잘라버렸다. 그리고 흙을 다시 더 덮어주었다.

 

튤립이나 수선화는 숙근식물이라 겨울에는 잠을 자야하는데 11월에 순이 올라오면 큰 낭패가 아닌가? 곧 얼어 죽을 터인데 내년에 다시 꽃이 핀다는 보장도 없으니 정말 황당한 일을 마주한 것이었다.

봄에 과연 어떻게 될지 걱정을 하면서 새싹이 올라오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을 해보니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파란 잎이 무성하게 나왔다. 잎이 약간 잘린 것 같은 놈들도 몇 개 있었으나 겨울을 이겨내고 풍성하게 자태를 뿜어주어서 무척 기뻤다. 잘라 낸 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꽃 피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새순이 올라오지 않았던 뒤쪽의 수선화는 예쁜 꽃들이 피어났는데 순을 잘라내었던 앞쪽에는 종내 소식이 없었다. 다른 꽃들은 이미 꽃이 시들고 고개 떨구고 있음에도 새순을 잘라내었던 놈들은 여전히 잎만 푸를 뿐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꽃인데 나의 실수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수선화는 가급적 자리를 자주 옮겨주어야 한다는데 이번 가을에 다치지 않게 조심하여 구근을 캐보면 내년에 예쁜 꽃을 피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4월23일

 

 

작년 가을에 새순이 올라오지 않았던 수선화는 꽃이 피었다
작년에 새순을 잘라내었던 앞쪽 수선화는 영영 꽃이 피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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