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완 장군의 아들 고 장성호의 묘지다.
" 여기 채 못다핀 한송이 꽃이 최고의 善을 위해
최대의 忍苦로 向學하다 首席의 영예를 안고 19년4개월의 짧은 일생을 마치고 고이 잠들다.
1962.10.1~ 1982.1.12"
산소에 다녀오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자 오늘 새벽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인터넷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정치인이 아닌가?
부모님이 영면하고 계시는 용인공원에 오랜만에 다녀오기로 하고 간단한 채비로 출발했다.
아래쪽 묘지에는 일찍 온 다른 가족들이 모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이가 든 탓일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기가 간단치 않다. 대 여섯 번 쉬고서야 겨우 도달했다.
아버님이 1994년도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당시 심어두었던 향나무가 엄청 자라 절을 할 장소까지 침범할 정도다. 내가 게으른 탓에 자주 들러 가지를 잘라주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다. 이제 내 위의 세형님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다음은 내 차례 다는 생각에 갑자기 숙연해진다.
돌아내려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 바로 옆에 있는 장태완 향군회장의 아들 묘지엘 잠깐 들렸다.
1212사태 때 전두환 부하들과 싸우다가 잡혀 들어간 장태완 장군의 아들이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한 바로 그 무덤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1학년생이었던 열아홉 살의 젊은 청년 장성호군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 끝내 목숨을 내던진 비극의 인물이었다.
늘, 배롱나무가 피어있던 곳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차분하게 묘비 옆에 있는 글귀들을 읽어보았다. 참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그들 가족의 명복을 빌며 잠시 숨을 돌리며 천천히 읽어보았다. 묘지 앞 제단의 세 모서리에 30년도 더 되었을 글귀가 내 심금을 울렸다.
모든 글귀는 아마도 엄마의 애끓는 장탄(長歎)이었으리라.
“꿈마다 너를 안고 얼굴 비비고/손 쓸어보고 애꿎인 꿈은 덧없이
깨드구나 우리 다시 만나/손 꼭 잡고 놓지 말자“
가운데 제단의 하단과 왼쪽 하단에는 이런 글귀도 적혀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장성호야/내 어느날 네곁에 와서 짧았던 이승의/못다한 모자의 정 모두 풀어 보리”
“홀연히 떠나버린 너를 잃고/애태우는 이 엄마를 어쩌라고“
집에 돌아와 장성호군의 어머님은 살아있는지 궁금해 했는데 장태완을 검색해보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잡혀가서 막걸리만 마시다가 돌아가셨고 그의 아들 성호는 자살하고 그의 부인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기사가 떴다.
이제 이 묘지에는 누가 다녀갈까, 덧없는 인생이다.
음복주 청하 몇 잔 마시고 터덜터덜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2015년11월22일
▼용인공원의 이런저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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