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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마시며

산소에 다녀오다

by 빠피홍 2015. 11. 22.


                    장태완 장군의 아들 고 장성호의 묘지다.

                      " 여기 채 못다핀 한송이 꽃이 최고의 善을 위해

                      최대의 忍苦로 向學하다 首席의 영예를 안고 19년4개월의 짧은 일생을 마치고 고이 잠들다.

                      1962.10.1~ 1982.1.12"

    



산소에 다녀오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자 오늘 새벽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인터넷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정치인이 아닌가?

 

부모님이 영면하고 계시는 용인공원에 오랜만에 다녀오기로 하고 간단한 채비로 출발했다.

아래쪽 묘지에는 일찍 온 다른 가족들이 모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이가 든 탓일까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기가 간단치 않다. 대 여섯 번 쉬고서야 겨우 도달했다.

 

아버님이 1994년도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당시 심어두었던 향나무가 엄청 자라 절을 할 장소까지 침범할 정도다. 내가 게으른 탓에 자주 들러 가지를 잘라주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다. 이제 내 위의 세형님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다음은 내 차례 다는 생각에 갑자기 숙연해진다.

 

돌아내려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 바로 옆에 있는 장태완 향군회장의 아들 묘지엘 잠깐 들렸다.

1212사태 때 전두환 부하들과 싸우다가 잡혀 들어간 장태완 장군의 아들이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한 바로 그 무덤이다. 당시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1학년생이었던 열아홉 살의 젊은 청년 장성호군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 끝내 목숨을 내던진 비극의 인물이었다.

 

, 배롱나무가 피어있던 곳이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차분하게 묘비 옆에 있는 글귀들을 읽어보았다. 참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그들 가족의 명복을 빌며 잠시 숨을 돌리며 천천히 읽어보았다. 묘지 앞 제단의 세 모서리에 30년도 더 되었을 글귀가 내 심금을 울렸다.

 

모든 글귀는 아마도 엄마의 애끓는 장탄(長歎)이었으리라.

 

꿈마다 너를 안고 얼굴 비비고/손 쓸어보고 애꿎인 꿈은 덧없이

깨드구나 우리 다시 만나/손 꼭 잡고 놓지 말자

 

가운데 제단의 하단과 왼쪽 하단에는 이런 글귀도 적혀있다.

 

아들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장성호야/내 어느날 네곁에 와서 짧았던 이승의/못다한 모자의 정 모두 풀어 보리

 

홀연히 떠나버린 너를 잃고/애태우는 이 엄마를 어쩌라고

 

집에 돌아와 장성호군의 어머님은 살아있는지 궁금해 했는데 장태완을 검색해보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잡혀가서 막걸리만 마시다가 돌아가셨고 그의 아들 성호는 자살하고 그의 부인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기사가 떴다.

 

이제 이 묘지에는 누가 다녀갈까, 덧없는 인생이다.

음복주 청하 몇 잔 마시고 터덜터덜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20151122



▼용인공원의 이런저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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