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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14-육지에서 소주 사서 들고 오던 관광객이 사라진 까닭은...

by 빠피홍 2024. 5. 6.

                  울릉농협 하나로마트 남양점 신축건물과 당일 오픈한 매장 안 모습

 

 

[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14-

육지에서 소주 사서 들고 오던 관광객이 사라진 까닭은...

 

 

지난 3월15일 울릉농협이 남양리에 새로운 건물을 완공하고 하나로마트 개점행사를 했다는 소식이다. 언뜻 보아도 육지의 어느 곳과 다를 바 없는 멋진 건물에 매장면적도 꽤 넉넉해 보인다. 50평 가까운 148㎡라고 한다.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현대식 시설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조합장을 비롯한 많은 당사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되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남양리와 남서리의 인구를 합쳐봐야 구백 여 명도 되지 않는 곳에 1층에는 이렇게 훌륭한 매장을 갖추고 2층에 농협 남양지점 사무실 그리고 3층에는 회의실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남양리의 농협회원과 주민들에게는 꿈같은 복덩어리가 굴러들어온 셈이어서 모두들 크게 기뻐할 것 같다. 게다가 노인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니 상상이라도 해볼 수 있었던 일인가?

 

내가 청년이었던 시절에는 도동리의 농협 매장에는 부지갱이 같은 산나물 몇 종류를 판매하던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렇게 작은 마을에 육지와 견주어도 꿀릴 것 없는 건물이 들어서고 진열상품 또한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오랜 세월 질 좋은 생필품을 제 때에 손에 넣지 못하고 섬에 산다는 것이 마치 죄인이 된 양 온갖 설움에 울분을 새겨왔던 변두리 지역 주민들의 숙원을 일거에 풀어주게 된 셈이다.

 

관광객 4십만 명을 넘어 100만 관광객 목표를 두고 있는 작금이고 보면 주민생활의 편의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유통업체의 빠른 증가는 어쩜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초 썬플라워호가 다니던 시절 모처럼 고향에 오게 되어 감회 깊은 설렘으로 도동항 부두에 발을 내딛는 순간 어느 관광객이 소주 한 박스를 어깨에 메고 일행들과 함께 하선하고 있었다. 울릉도에는 소주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너무 비싸서 사먹을 수 없기라도 하다는 듯 그의 당당한 모습에 난 민망하기도 했거니와 씁쓸한 마음이 쉬 떠나지 않았었다.

 

울릉도에는 물가가 비싸니 소주는 꼭 사가지고 들어 가야한다고 누가 귀띔을 해주었을까? 어떻게 이런 소문이 돌았기에 그 무거운 소주병을 상자채로 들고 장시간의 멀미를 마다않고 소주병을 지키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랬다. 당시만 해도 울릉군 홈페이지에는 비싼 물가와 바가지요금으로 관광객들의 쓴 소리가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때가 있었다. 이랬던 울릉도가 정말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CU마트 직원의 말에 따르면 소주가격은 육지보다 울릉도가 오히려 더 싸다고 한다.

 

1973년 울릉도에 하나로마트가 처음 개설된 이래 이번 남양점이 새로 오픈됨에 따라 도동점, 저동점, 현포점, 태하점 등 모두 다섯 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남양점 가까이에 있는 태하점의 무용론도 거론되었으나 원주민들의 뜻에 따라 존속하기로 했다고 한다. 흑자를 낼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해 보인다. 하나로마트가 주로 나이 든 원주민이 이용하는데 비해 젊은이들과 관광객은 편의점을 더 즐겨하고 있어 그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CU편의점이 2010년대 초 1호점이 오픈된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 일곱 개의 점포가 있었으나 최근에 신규점포 세 개가 더 늘어 이제는 열개나 된다고 한다. 도동에 도동점과 도동중앙점이, 저동에 2호점과 저동항점이 그리고 천부점, 현포점, 사동점 등이 있으나 최근 공항점, 남양점 그리고 사동3리에 또 하나의 사동점이 오픈되었다고 한다.

                    CU울릉2호점과 GS25울릉저동점

 

울릉군의 인구는 수 년 째 정체되어있는데 비해 편의점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광객의 영향이 클 것이다. 단순히 생필품을 구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형식의 운영을 하거나 택배서비스를 하는 등 육지의 편의점 수준으로 서비스의 고급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2년 전 내가 들렀던 CU사동점과 저동점은 매장의 규모와 물품 그리고 가격이 매우 저렴한 느낌을 받았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오고 캔 맥주 값이 우리 동네보다 오히려 싼 느낌이었다.

 

GS25도 두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택배비를 반액에 서비스한다는 공고까지 나붙었다. 도서지방은 도선료라는 명목의 택배비가 기본 택배비에 추가되는데 이를 반액으로 제주도와 울릉도 그리고 백령도에까지 확대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 외에 다른 유명 편의점은 없으나 개인가게가 있어 예나 지금이나 XX상회라는 이름으로 된 낡은 가게의 상점도 여전하다. 태하리의 오복상회나 도동리의 경주상회 같은 것 들이 그것이다.

 

육지의 재래시장 활성화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듯이 원주민이 운영하는 가게의 향방도 문제로 대두될 듯하다. 울릉도에서는 아직도 작은 가게들이 존속하고 있는데 이들이 살아가야할 길도 모색해야할 것 같다. 이들 전통적인 소규모 가게들이 유명 편의점이나 하나로마트와 경쟁이 가능하겠는가? 육지에서는 가게 속의 가게, 즉 숍인숍(shop in shop)형태의 멀티숍을 운영하여 위기를 타개하고 있다. 일반 가게가 생필품 판매만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짐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어려움을 타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하리의 오복상회와 도동 경주상회(블로그에서)

 

내가 초등학교 시절의 울릉도는 물류 중심이 도동리였다. 육지에서 들어오는 배들이 정박하여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곳도 도동항이 유일했고 행정기관 모두가 모인 곳 또한 도동이어서 상업이 자연스레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섬 일주가 가능한 포장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험준한 깔딱고개를 걸어서 넘어야 하는 운명이어서 가벼운 봇짐 정도를 들거나 메고 다녔을 뿐 대부분의 화물은 발동선으로 서면과 북면으로 운송되었다.

 

도동리는 앞 골목과 뒷골목으로 도로가 양분 되어있는데 대부분의 상점은 앞 골목에 있었다. 지금의 읍사무소에서 부두 쪽으로 내려가면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서로 마주한 채 나란히 하고 있었다. 신발가게, 정육점, 약국, 양복점, 소주공장, 포목점, 빵집, 이발소, 문방구점, 철물점, 과자점, 양조장, 아이스케키점, 어구점 등 울릉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사야만 했다.

 

도동리의 뒷골목에는 두부 만드는 집이 있어 내가 어머니 심부름으로 자주 두부를 사러 간 적이 있었고 경찰서 밑에 포항집이라 불리던 작은 가게에서 이등병에서부터 육군대장까지 종이에 인쇄된 장군놀이용 딱지와 양철로 된 장난감 칼도 사곤 했었다. 내 친구 김태윤의 부모가 운영하던 작은 가게에서 연못과 금붕어가 칼라로 그려진 공책을 샀던 기억이 새롭다.

 

앞 골목에는 초등학교 친구 부모가 운영하던 서울집이라 불리던 문방구가 있었고 센베이과자와 눈깔사탕을 사러 양조장 앞의 과자가게도 자주 들락거렸던 것 같다. ‘호민이빵집’이라 불리던 빵집이 있어 이곳에서 지금의 호빵과 같이 새하얀 빵을 구워내고 젠자이라고 불렀던 단팥죽의 새알심 굽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볼거리이면서 최고로 맛난 빵이었다.

 

이제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다. 먹거리에 꼭 필요한 쌀과 밀가루 등 재료를 들여와 만들던 술과 과자와 빵, 그리고 학용품, 아이스크림, 기타 생필품 등은 이제 하나로마트와 편의점으로 그 역할이 바뀌면서 울릉군민에게는 값싸고 질 좋은 제품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CU나 GS25 편의점은 젊은 층이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는 원주민이 필요로 하는 생필품 위주로 구매패턴도 서서히 변하고 있는 듯하다. 기존의 토종가게들은 어떻게 변화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헤럴드 경제

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