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8>
최병권 의원, 이영관 이사장에서 한익현 대표의 장학금 기부까지
새해 들어 울릉군에 장학금을 기탁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려오고 있다. 그것도 적은 금액이 아닌 몇 백 몇 천만 원 규모다. 특히 2012년부터 한 해도 그르지 않고 꾸준히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는 우정산업의 한익현 대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소 레미콘공장을 운영하는 업체 대표로서 1월12일 남한권 울릉군수를 방문하여 장학금 2천만원을 기탁했다. 장학금 외에 ‘희망나눔 캠페인’ 모금활동에도 참여해 매년 성금을 기부하고 있으나 장학금 기부만으로도 누적 액이 1억3천5백만원이 되었다고 한다. 한익현 대표가 이토록 10여 년 이상 거액을 기부한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한 대표의 진정한 후배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024년1월12일 한익현 대표가 남한권 울릉군수에게 장학금 2천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첫 장학금 기탁은 1월3일 울릉산림농산이었다. 울릉도산 마가목과 엉겅퀴를 가공식품으로 제조 판매하는 회사로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에 3천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동도레미콘의 방대식 대표가 2천만원을, 울릉공항건설 참여업체에서도 1천만원을, 북면 천부 출신의 우영엔텍 이창우 대표도 1천만원을 기탁했다. 이뿐만 아니라 울릉도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금복문화재단의 1천만원과 한국지식인 협회에서 4년째 울릉중학교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전달했다. 울릉군을 제외하고는 어쩜 농협울릉군지부가 제일 큰 기탁자일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매년 수 천만 원씩 소리 소문도 없이 울릉장학회와 북면장학회 그리고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에 기부를 해왔기 때문이다.
울릉도에 장학회가 발족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90년8월 재단법인 ‘울릉장학회’가 설립되었으니 34년이 되었지만 출발은 험난했다. 울릉도에서 3대와 4대 국회의원(당시엔 울릉도 단독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했고 이후 포항남구와 울릉군이 병합된 선거구역으로 바뀌었음)을 지낸 최병권(崔秉權)씨가 설립 13년 전인 1977년7월 대지 419평을 장학회 설립을 위해 내놓음으로써 첫 삽을 뜨게 되었다. 이를 한일고속에 팔아 마련한 자금 1천만 원이 종자돈으로 마련되었으나 위원회 구성이 지연되고 특별한 활동 없이 차일피일 미루는 통에 유명무실한 장학회가 되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지역인사들 21명이 참석하여 다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1988년부터 전국 출향인사와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하며 모금활동을 벌이게 되었다. 1년에 걸친 모금활동 끝에 약 7천여만 원의 예치금을 모을 수 있었다. 당시 주도적으로 활동한 지역인사로는 이영관(李永官), 김용철(金鎔喆) 그리고 이상태(李相台)씨였고 초대 이사장에 이영관(李永官)씨가 취임을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008년까지 20년간 총 96명으로부터 173회에 걸쳐 1억3천6백만 원을 모금할 수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울릉장학회 이영관 이사장으로부터 받은 1993년의 감사패와 울릉장학회 김종문 이사장의 장학금 수여식,
동도레미콘으로부터 장학금을 전달받고 있는 남한권 군수
이영관씨가 출연한 천오백만 원을 필두로 울릉의원의 이일선 원장, 남성룡, 김구권, 허원관 등으로부터 각각 천만 원이 모금되었다. 나 또한 적은 금액이긴 하나 13회에 걸쳐 5백2십만 원을 기부했다. 이영관 이사장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고교생 등록금 명목으로 일 년에 1백3십만 원씩 4년간 지원한 바 있었다. 지금도 내 장식장에 검게 퇴색된 향나무 액자에 담긴 1993년12월31일자의 감사패가 옛 추억의 비밀상자인양 뒷 구석에 놓여있다. 초대 이사장이던 이영관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8년 간 울릉장학회를 이끌면서 끊임없이 학생들을 지원해왔다. 그는 삼영화학 이종환 회장이 만든 관정교육재단만큼은 아니더라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울릉도 장학사업의 선구자였다.
울릉장학회가 1991년부터 2010년까지 180 여명의 대학생에게 3억6천만 원을 지급함으로써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교육환경이 열악한 울릉도 학생들에게는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8년 7월 김종문 이사가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나 11월에 울릉군이 만든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가 설립됨에 따라 그 역할이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남은 예치금 2억여 원에 이자수입이라고 해봐야 연간 천만 원도 아니 되는 돈으로 장학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울릉장학회는 이제 소명을 다한 채 교육발전위원회에 자리를 넘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08월11월에 설립한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의 장학사업은 종전의 울릉장학회와는 달리 세부사항이 조례로 잘 정리되어있다. 우선 진학장학금(고교생 및 대학생 입학시 1회)과 생활안전자금(대학생 학기당 백만원), 향토장학금(대학생 학기당 백만원), 성적우수 장학금(대학생)으로 세분화되어있으며 이외 특기장학금(미국고등학교 교환학생 입학지원금), 미국대학 입학지원금, ESL과정 지원금, 다자녀 장학금 등으로 구분되어있다.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의 연도별 장학금 지원실적표
초창기 울릉장학회가 20년에 걸쳐 모금했던 금액이 1억3천6백만 원인데 비해 교육발전위원회의 최근 모금액은 한 해에만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걷히고 있다. 엄청난 변화다. 2019년도에 1억7천6백만 원, 2020년도에 1억3천5백만 원, 2021년도에 1억5천3백만 원, 2022년도에 1억4천3백만 원 그리고 2023년도에는 9천2백만 원이 모금되었다. 모금 회수도 일 년에 평균 100여 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초창기인 2012년의 모금회수 9건에 모금액 2천2백만 원이던 것이 2018년도 까지 조금씩 늘어나면서 코로나가 발생하기 시작한 2019년도부터는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현재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의 장학기금 현황을 보면 보통예금이 4억2천3백만 원, 정기예금이 4억2천만 원 그리고 저축성보험이 4건으로 16억 원이다. 기금 총액이 24억4천3백만 원이다. 당초 목표액 50억 원에 이제 절반을 달성한 셈이다.
2006년7월 울릉군교육발전위원회를 설립하기 직전 당시 정윤열 군수는 “푼돈에 지나지 않는 장학금이 아니라 대학입학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장학금을 지급, 학생들의 자질을 더 높이겠다.”고 포부를 밝히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까지만 해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거나 4년 내내 요건이 충족되는 학생들에게 장기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 같지 않아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이부진 이사장이 운영하는 두을장학재단을 보면 매년 16개 대학의 1학년 여학생을 선발하여 3년간 등록금 전액과 자기개발비 60만원을 매 학기 지급한다고 한다.
현재 사단법인인 울릉군교육발전협의회가 ‘울릉군 장학재단법인’을 별도로 설립하여 장학사업을 보다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설립하여 보다 실효성 있는 장학사업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면면히 이어져 온 울릉도의 장학사업이 또 한 번의 대변신을 시도하는 것 같아 공연히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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