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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10-‘맛의 방주’를 개척한 나리분지의 한귀숙 지부장

by 빠피홍 2024. 3. 11.

                                   ‘맛의방주’에 등재된 품목과 함께 울릉도산 나물로 만든 토종밥상

 

 

<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10-

‘맛의 방주’를 개척한 나리분지의 한귀숙 지부장

 

 

며칠 전 ‘울릉도 땅과 바다, 삶터를 일군 여성들’이라는 책이 손에 들어왔다.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발간한 것으로 네 여인의 삶을 통해 개척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울릉도 여성들이 농어업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중 한귀숙씨의 ‘울릉도 농군, 나리분지에서 희망을 실현하다’가 눈에 다가왔다.

 

한귀숙 대표는 나리분지에서 울릉도 농가맛집 1호인 ‘산마을’ 식당을 운영하면서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울릉지부장을 맡고 있다. 2013년4월 한국슬로푸드 협회가 울릉군과 슬로푸드 MOU를 체결하면서 울릉군도 이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슬로푸드(Slow Food)는 이탈리아 북쪽의 작은 마을 브라(Bra) 출신의 음식 운동가인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가 와인과 어울릴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던 끝에 1986년에 시작된 운동이다. 좋은 음식과 미식(美食)적인 즐거움, 그리고 느린 삶을 지향하고 지키려는 것이 초기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슬로푸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까지 발전하며 위험에 빠진 지구의 생존 문제까지 다루게 되면서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들어갈 품목을 선정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서 따온 ‘맛의 방주’란 잊혀져가는 음식 맛을 재발견하고 멸종위기에 놓인 종자와 품목을 찾아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어 널리 알리고 지역음식 문화유산을 지켜 나가는 운동이다. 동식물의 종(種)은 물론, 가공식품으로까지 확대되었다. 2023년 7월 기준으로 전 세계 161개국에서 6,110여 종이, 한국에서는 ‘섬말나리’를 비롯하여 111종이 국제 슬로푸드 '맛의 방주'에 등재되었다.

 

한국협회가 지정한 ‘맛의 방주’에 1호와 2호는 제주도의 ‘제주푸른콩장’과 ‘앉은뱅이밀’이, 울릉도의 ‘섬말나리’와 ‘칡소’가 3호와 4호로 등재되면서 울릉옥수수 엿청주, 울릉홍감자, 울릉손꽁치, 자연산긴잎돌김, 물엉겅퀴 등 7개의 울릉도산 농수산물이 순차적으로 등재되었다. 그리고 2023년12월, 드디어 ‘명이(뿔명이나물)’가 여덟 번째로 울릉도의 맛의 방주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3호에 등재된 ‘섬말나리’는 산림청의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 37호(1997년)로 지정된 백합과의 귀한 야생화이며 구황작물이기도 하다. 울릉도 전역에 많이 분포되어있던 ‘섬말나리’가 점차 사라지자 한귀숙 지부장은 이를 방치하다가는 모두 사라질 것을 염려해 수차례의 실패 끝에 재배에 성공했다고 한다. 2003년8월에 대구은행이 중심이 된 ‘섬말나리’ 복원 팀이 나리동에 ‘섬말나리 동산’을 조성함으로써 이제 이곳이 자타가 인정하는 섬말나리의 원조마을이 된 셈이다. 음식으로는 ‘섬말나리 범벅’과 ‘섬말나리 산채비빔밥’등이 있다.

 

2009년6월경 모처럼 고향에 들른 김에 갑자기 와달리에 가보고 싶었다. 배로는 몇 차례 다녀왔지만 정매화골에서 내려가는 경사진 길은 초행이었는데 발밑에 뭔가 눈에 띄는 식물이 있었다. 꽃망울이 몇 개 맺혀있는 바로 그 ‘섬말나리’였다. 얼른 캐서 담아오고 싶은 유혹을 애써 뿌리치면서도 누군가 캐 갈 것 같은 불안감을 안은 채 그냥 지나친 적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수소문한 끝에 산마을 식당의 한귀숙 대표를 소개 받아 10쪽을 구입해서 정원에 심었다. 지금도 매년 꽃을 피우고 있어 고향의 향기를 만끽하고 있다.

 

4호인 ‘칡소’는 동요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에 나오는 토종 한우이며 정지용의 시 ‘향수’에 등장하는 ‘얼룩빼기 황소’도 이 칡소다. 검은 무늬와 누런 무늬가 섞여있고 맛이 뛰어나 유명 백화점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옛날 도동리의 청국샘 맞은편 푸줏간에서 먹던 소금구이 맛은 어떤 한우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칡소 고기 맛이었다.

 

17호인 ‘울릉 옥수수엿청주’는 홍감자와 마찬가지로 쌀이 귀했던 울릉도에서 옥수수로 청주를 만든 것임으로 지역특색이 그대로 녹아 있다.18호인 ‘울릉 홍감자’는 울릉도 개척초기 쌀을 대신한 먹거리였으며 개량 감자보다 크기가 작고 붉은 빛을 띠며 입자가 부드럽고 깊은 맛과 저장성이 뛰어나다. 내가 홍감자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지 기억에 없으나 매일같이 먹던 감자밥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돈다. 19호인 ‘울릉 손꽁치’는 꽁치가 많았던 울릉도 근해에서 모자반 같은 해초 속으로 손을 넣어 꽁치를 잡는 전통어업 방식이다.

 

52호인 ‘자연산 긴잎돌김’은 12월부터 2월까지 갯바위에 붙어 자라는 김으로 무침, 부각, 구이, 죽, 부침개, 김국, 떡국 등 다양하게 조리를 해 밥상에 올리고 있다. 103호인 ‘물엉겅퀴’는 양지바른 곳 어디에서나 잘 자라며 뻣뻣하고 가시털이 많은 일본 엉겅퀴에 비해 부드럽고 맛이 뛰어나다. 섬엉겅퀴, 물엉겅퀴, 울릉엉겅퀴, 엉거꾸라고도 불리며 된장에 끓인 엉겅퀴해장국이나 엉겅퀴꽁치국, 엉겅퀴꽁치조림 등으로 먹는다. 나는 꽁치 미트볼을 넣은 엉겅퀴국을 좋아하는데 된장만 넣고 끓여도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있어 좋다. 올 봄에는 고향친구가 보내 온 씨를 잔뜩 심어 동네사람들과 부지갱이와 물엉겅퀴 파티라도 해야할까보다.

 

111호인 ‘명이(뿔명이나물)’는 울릉도 개척시대 식량이 부족한 겨울과 봄 사이에 생명을 이어주었다 하여 '명(命)이풀' 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온 산천에 가득했다. 그러나 너도나도 마구 캐내는 통에 이 또한 곧 사라질 것을 염려한 한 지부장은 씨를 받아 재배하기 시작했다. 명이는 생채나 김치 또는 장아찌로 다양하게 만들어지며 이제는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음식이 되었다.

                                     슬로푸드 회원들이 나물 시식행사에서 관광객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한 지부장은 울릉군의 슬로푸드 회원 70여명을 이끌며 소멸위기에 놓인 울릉도 고유의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수년 전에는 향토음식 개발경진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울릉도 농산물의 가치를 일깨워 대중화시키는 것은 물론, 오징어축제나 각종 행사시에 슬로푸드 나물무침을 무료로 제공하고 어린이들에게는 텃밭 가꾸기 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슬로푸드의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며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울릉군과 협력하여 고로쇠된장을 만들어 초중등학교에 무상 제공하는 활동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울릉군민의 날에서 울릉군민상을 받은 한귀숙 지부장(오른쪽)과 맛의방주에 등재된 ‘명이’ 인증서

 

이와 같은 노력 때문이었을까 지난 해 10월25일 울릉군 개군 123주년 기념식에서 슬로푸드협회 울릉지부가 울릉군민상을 받았다. 한귀숙 지부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부지갱이와 명이장아찌 장인은 물론, 울릉도 전통음식의 대가로 불리며 불철주야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한귀숙 지부장은 ‘옥수수엿청주’가 비록 ‘맛의 방주’에 등재는 되었지만 좀 더 연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두메부추, 참고비, 삼나물, 대황 등 울릉도의 토종 농수산물이 계속 개발되어‘맛의 방주’에 속속 등재되도록 함으로써 그 가치를 높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섬말나리 꽃과 ‘섬말나리 동산’ 안내판

 

슬로푸드 본부가 있는 이탈리아에 가서 울릉도 ‘맛의 방주’를 선 보였던 한귀숙 지부장의 뿌리가 나리동이며 대표적인 심볼 또한 ‘섬말나리’ 임에도 20여 년 전 애써 만들어놓은 ‘섬말나리 동산’이 모두의 무관심 속에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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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경제

홍상표/울사모편집장 에세이스트

 

20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