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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7>두 장군(將軍)이 만들어 낸 울릉도 지원 특별법

by 빠피홍 2024. 2. 4.

[기고] 울릉도의 대변신 <7>

두 장군(將軍)이 만들어 낸 울릉도 지원 특별법

 

 

2023년12월20일은 울릉도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토록 염원했던 ‘울릉도.독도 지원 특별법’이 만장일치로 국회본회의를 통과하였기 때문이다. 특별법 명칭이 ‘울릉도.흑산도 등 국토 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으로 바뀌긴 했지만 추진한지 10여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본회의 통과를 위해 마지막까지 국회의원들의 방문을 두드리며 특별법제정을 호소하던 남한권 군수가 지친 몸으로 전철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짠하게 다가온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모습 그대로다.

                      본회의 통과 사흘 전까지 동분서주했던 남군수가 지친 몸을 뒤로한 채 전철에 앉아 귀도하고 있다.

 

한 나라에 국운(國運)이 있다면 동해의 작은 섬 울릉도에도 도운(島運)이 없으란 법은 없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인 1962년10월 박정희 장군이 2000톤급 군함을 타고 울릉도로 온 적이 있었다. 혁명을 일으킨 이듬해라 더욱 놀랍긴 하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서 울릉도를 전격적으로 찾은 것이었다. 당시 울릉군 농협조합장이었던 아버님으로부터 빗속을 뚫고 울릉도에 첫 발을 디뎠던 박정희 장군의 당시 상황을 상세히 들은 바 있었다.

 

박정희 장군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당시 “이렇게 내팽개쳐 둘 거라면 차라리 일본에 팔아버리시지요!”(2011-7-29 동아일보, 울릉도 그리고 대통령)라는 어느 공무원의 고언이 있어서일까 이듬해인 1963년3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울릉도종합개발계획’을 발표한다. 국가 대개혁의 시발점이었던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1962년에 공포되었으나 재원조달 문제로 1964년에 보완하여 수정 확정됨)보다 앞서 울릉도 지원을 전 국민들에게 알린 것이었다. 혁명을 일으킨 지 채 2년 도 안 되어 국가의 주요안건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음에도 당시로서는 별 볼일 없는 동해의 작은 섬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그로부터 울릉군민의 숙원사업이었던 섬일주도로 공사, 수력발전소 건립, 정기여객선 취항 그리고 항만공사 등이 실제로 착수되었다. 내자동원과 외부자원이 거의 전무했던 혁명정부 초기 어느 누구 관심조차 없는 울릉도를 위한 종합개발을 확정한다는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는 울릉도에 대한 박정희 장군의 깊은 애정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난 지금도 박정희 장군이 왜 이토록 애착을 갖고 작은 섬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려고 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천부에 있는 수력발전소는 물론 도동항의 집중개발과 저동항 어업전진기지 공사도 이후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저동항은 1977년에 공사비 93억원으로 공사를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1,933미터의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이 공사로 인해 외롭게 떨어져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촛대바위섬이 방파제와 연결됨으로 인해 그 위용이 사라지고 말아 지금도 짙은 아쉬움이 있지만 오늘날 더 발전된 국가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니 위로를 삼아야할까 보다.

 

여객선의 취항도 획기적이었다. 한일청구권 자금이 포함된 국가보조50%, 정부융자40% 그리고 동양해운(대표 김만수)10%로 350톤 급 철선인 청룡호가 본격적인 여객선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큰 선박의 접안시설이 없어 경비정으로 갈아타고 뭍으로 내렸고 줄사다리로 오르다가 물에 빠졌던 박정희 장군은 무엇을 생각하며 청와대로 돌아왔을까? 군사혁명을 일으킨 지 일 년 만에 울릉도를 가보자고 한 박정희 장군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저동리 관해정에 위치한 박대통령 순찰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 육군대장 박정희장군 순찰비 공비>라고 적혀있고 순찰비 제작에 도움을 보탠 울릉군민들의 명단이 기록되어있다.

                                                                        도동리에 있는 박정희장군 기념관

 

울릉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수백 년 수령의 후박나무에 둘러쌓인 저동리의 관해정에는 박정희 장군 기념순찰비가 세워져있으며 지금도 필묵회 회원들이 비문글씨에 붓 먹을 입히며 그가 이룬 공적을 생각하며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도동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 있다. 그가 하룻밤 묵은 곳이다. 당시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던 울릉도에 일박했던 울릉군수 관사가 지금은 기념관으로 변모해 울릉도 사람들은 그를 기리고 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그가 오늘의 울릉도 지원 특별법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박정희 장군의 혜안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지금의 섬 일주도로 완성과 완벽하게 축조된 항구, 그리고 호화 여객선들을 생각해보면 울릉도에 큰 운이 따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전적으로 박정희 장군으로 인해 입은 큰 수혜가 아닐 수 없다.

 

2022년7월에 취임한 울릉도 유일 육군장군 출신인 남한권 군수의 ‘울릉독도 지원 특별법제정’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남 군수는 가는 곳마다 특별법이 첫째 과제라고 설파했다. 3만5천명이라던 울릉도 인구가 만 명 이하로 쪼그라들고 주민들의 정주여건은 날로 악화되고 그나마 경제활동의 주축인 오징어잡이가 어려워져 정부의 도움이 더욱 절실하다고 취임 초부터 허리춤을 쥐어 잡고 뛰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제4회 섬의날 행사에서 개최된 워터플라이보드 수상쇼와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에서 개최된 캘리그라피전시회, 경북도민체육대회 그리고 독도에서 개최된 독도현지 부서장회의를 통해 특별법제정의 당위성과 이에 대한 홍보캠페인과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모습들이다.

 

남 군수는 울릉도 내부에서부터 경상북도 그리고 중앙무대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구체화했다. 지난 해 3월28일에는 울릉군부서장 및 공무원 70 여명과 함께 독도 현지에서 강한 기라도 받겠다는 듯 특별법제정을 추진하는 세부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에는 꼭 실현하리라는 결연한 의지로 독도에서부터 첫 걸음을 디딘 것으로 보였다. 경북 지자체 단체 협의회에서도,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도 특별법제정 호소와 함께 서명운동을 벌였다. 집권여당인 국민의 힘과 행안부 등을 방문하고 국회 행안위 김교흥 위원장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광폭활동을 했다.

 

민선8기 일년간 국회를 가장 많이 방문한 경북도의 지자체장은 구미시 김장호시장이 19회, 포항시장이 8회, 그리고 남군수 7회로 3위였다. 특별법제정 연내 통과를 위해 더 잦은 상경이 필요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 지금쯤 남한권 군수의 국회방문 회수가 1위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여타 지자체장들이야 몇 시간이면 국회를 방문할 수 있지만 울릉도는 어디 그렇던가? 바다날씨와 싸워야하고 몇 시간이 걸리는 배를 타야만 겨우 육지에 도착할 수 있어 출장의 강도에도 여타 지자체장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몸에 밴 강인한 그의 군인정신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울릉독도 지원특별법은 2013년 이병석 의원과 2016년 박명재 의원의 발의가 있었으나 모두 무산되었고 2020년 현 김병욱의원이 서해5도 지원특별법 개정을 통한 울릉독도 특별법 발의를 했다. 특별법을 추진한지 10여년 만에 김병욱의원과 남한권 군수의 찰떡궁합으로 드디어 국회의 험난한 문턱을 넘은 것이다. 남 군수는 일찍이 특별법 제정에 3전4기의 도전 정신을 갈파한 적이 있다. 그의 의지가 강하고 남다른 노력에 힘입어 좋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왼쪽 위 시계방향으로 국회공청회 안내포스트, 국회 행안부 상임위에서의 심의모습, 김병욱 의원과의 특별법홍보 그리고 울릉군의 전현직군수들과 의원단이 함께 한 모습

 

이번에 확정된 울릉도 지원특별법을 보면 울릉도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종합발전 계획을 5년에 한 번씩 재수립해 지속적으로 추진해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종합발전계획 수립 및 변경 △보조금특별 지원 △주민안전시설 우선지원 △교육비 등의 특별지원 △기반시설 설치 등 △불법조업방지 △생활인구 확대 지원 등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부족한 부분은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생각해보면 울릉도에는 두 명의 큰 장군이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은 박정희 장군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물론 남한권 장군이다. 박정희 장군이 혁명을 일으킨 지 채 2년이 안된 일 년 10개월여 만에 ‘울릉도종합개발계획’을 만들었듯이 남 장군 또한 8기 군수에 취임한지 일 년 6개월여 만에 ‘울릉도지원특별법’을 이끌어 냈다. 박정희 장군이 울릉도의 개발발전에 주춧돌을 놓은 큰 공로가 있다면 남한권 장군은 울릉도를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의 섬으로 만드는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분명 울릉도는 두 장군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것은 아닐는지? 이 또한 국운(國運)과 도운(島運)이 3전4기의 기운을 듬뿍 받아 더욱 정진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초대하여 그녀의 부친이 울릉도에 남긴 큰 업적을 기리고 저동리의 순찰비와 도동리의 기념관을 안내하면서 그의 은공과 이번의 특별지원법을 같이 기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울릉도의 대변신이 또 한 번 시작된 것 같아 흐뭇한 새해를 맞게 되었다. @

 

 

헤럴드 경제

 

2024-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