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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의 일상

봄비

by 빠피홍 2023. 4. 8.

실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영하의 아침이었는데 이젠 완연한 봄이구나 하는 순간 어느새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밤새 계속 내리고 있다. 정말 가는 줄기의 실비다. 딱딱하게 굳은 땅을 뚫지 못해 흙덩어리를 등에 진 채 안간힘을 쓰던 백합들이 쉬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바짝 말라 죽은 것 같던 목수국도 가지마다 새순이 보인다. 복수초가 서서히 꽃과 잎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조숙종인 히어리, 크로코스, 영춘화, 복수초가 모두 노란색을 띄는 꽃들인데 또 하나의 새로운 해를 기약하면서 자기 역할을 마감하려고 한다. 그런가하면 씨가 날아와 구석 진 곳에 뿌리를 박았던 할미꽃이 화사하게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한다.

 

세월의 순환이다. 오랜 고목이 된 백목련과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 하얀 산 벚꽃과 붉은 색을 띄는 송월 벚꽃이 진자주색을 띄는 클레오파트라 목련과 함께 비를 함초롬히 맞고 있다.

 

어제는 첫 봄 손님이 다녀갔다. 친구 박춘부가 예쁜 두 딸과 함께 와인과 케익을 들고 양평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면서 잠깐 들렀다. 늙은이들은 매사가 피동적이다. 반가운 표시도 적극적으로 표현 못하는 피동형의 인간들이 노인들이다. 양평 집에서 부인이 기다리니 빨리 가자고 했지만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고 못한 게 못내 걸린다.

 

 

@2023년4월5일